artranslation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한국역사사진'에 해당하는 글(1)
2007.05.22   이경민 <역사기록물로써의 사진아카이브> (펌글)


이경민 <역사기록물로써의 사진아카이브> (펌글)

이경민 <역사기록물로써의 사진아카이브>

-------------------------------------------------------------------------------------------------------->


저는 우스개 소리로 2001년에 사진계를 은퇴했다고 얘기합니다. 은퇴하기 전엔 사진전시 기획자로 6~7년간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사진계에선 사진이 예술로서 탄생된 것도 아닌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부분 예술사진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사진은 예술사진 외의 영역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들을 폭넓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과 같은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생각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전에 제가 몸담고 있었던 한국사진사연구소에서 1998년에 <한국사진역사전>을 기획한 때였습니다. 그 때는 8개월 정도의 전시기간을 통해 준비를 했지만, 사진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발굴해 검토 없이 전시를 치르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사진과 정치’라는 파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전역을 시도별로 나눠 그 지역의 주민들을 신체 측정한 사진들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빌려서 전시했습니다. 그 사진들을 처음 보게 된 것은 95년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인의 얼굴’이란 전시였는데, 한국인의 얼굴 유형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데이터로 이 사진들을 사용했습니다. 사진과 권력의 관계를 드러내 보여준 것은 98년 <한국사진역사전> 때였지만, 생산 맥락이나 그것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 후 재작년 시립미술관 <다큐먼트>전에서 다시 끌어내어 원래 생산맥락을 밝혀준 일이 있었습니다.

 

사진계에 있으면서 많은 사진을 봤지만, 제가 본 것은 예술이란 범주에서 본 미천한 양의 사진이고 그 이외에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사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차원에서 생산자 위주의 교육이나 논의가 주였고, 생산된 사진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재활용할 것인가 하는 그런 고민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동시대 사진들을 관리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지만 194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생산된 근대 사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 싶어 중앙대 박사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DCRC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산업자원부에서 지원받아 설립한 일종의 산학협동 기관으로 다양한 매체들의 원천자료들을 수집하여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사진이란 매체, 그 중에서도 근대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2001년도에서 2004년도 말까지 그 기관에서 활동했지만, 기관에서 수익문제와 근대사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책임자가 바뀌었습니다. 그 후 DCRC는 비즈니스 쪽으로 활로를 모색 위해 충무로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라이브러리용 사진들을 새로 구축하면서 제 역할이 없어졌습니다.


 

2005년부터 사진아카이브연구소를 개인적으로 운영하면서 후배들과 함께 사진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한데, 장비가 고가이고 인력 구성을 위해서는 지속적 예산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구축한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나 출판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공공기관에서 사진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져서 공동으로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저희가 구축한 근대 사진아카이브 이외에도 동시대에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을 경험해 볼 기회를 얻었는데, 그런 경험들의 일부분을 이 자리에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록문화와 사진아카이브의 구축 현황

 

오늘 강의 주제를 거창하게 ‘역사기록물로서의 사진아카이브’라고 정했지만, 그동안 사진아카이브 연구소에서 해왔던 사업들을 중심으로, 어떤 프로세스로 구축을 했는지 소개하고 전시·출판 컨텐츠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저도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쓰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아카이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학문 영역에서 다뤄야할 것 같습니다.

 

최근 기록물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가 되면서 관련 법규도 생기고 그런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관련 학과가 설치되었습니다. 90년 후반에 명지대에 설립된 기록관리학과를 비롯하여 현재 대학원 과정으로 6~7개 기록학 관련 학과가 있습니다. 기록관리법에 의해 2005년까지 중앙행정 부처, 2006년 지방 자치단체, 2008년 중앙행정부처 산하기관 등 연차별로 공공 기관에서 아키비스트를 법적으로 둬야 하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그런 수요를 위해 기록학 관련 학과 중심으로 기록관리사들이 양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록물에 관련된 법률이기에 정부행정부처에서 생산되는 기록물들, 즉 문서류와 같은 기록물들이 주된 관리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진이나 회화, 시각예술에 관련된 전문기록관리사는 아직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점차 사진을 포함한 시각이미지의 중요성이 인지되면서 인문사회학 쪽에서 기존 전통적 인문사회학과 영상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는데, 영상역사학, 영상인류학, 영상민속학, 영상구술사 등의 용어를 쓰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각이미지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아키비스트의 양성이 중요한데, 현재 기록학 관련 학과는 이러한 시각기록물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시각기록물 관련 전문아키비스트의 출현은 몇 년 정도 지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몇몇 기관에서 사진을 비롯한 시각 아카이브 구축 사업이 추진되면서, 학교에서 가르치진 않지만 문서 위주의 교육을 받은 아키비스트들이 그런 사업에 참여하여 경험적으로 책에서 배우지 못한 경험들을 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민주운동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한 ‘민주운동사업DB’를 구축할 때 처음부터 외대 기록관리학과 박사과정 전문요원을 메타 팀에 포함시켰습니다. 사진을 선별하고 디지타이징 한 이후 사진에서 다양한 메타 정보들을 항목별로 정리하여 나중에 검색이나 활용을 위한 목적으로 전문적인 인력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결국 사진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실 ‘민주운동사진DB’가 기록학적인 측면에서 공공기관 성격 갖는 곳에서 처음 시도한 사진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운동사진DB’ 이전에 여러 기관들이 지식정보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정통부에서 기금을 받아 자체 자료들을 DB화 할 때 사진들을 포함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경우 향토문화전자대전이라는 것을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어 2010년까지 계획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남문화전자대전’과 ‘충주문화전자대전’ 등 두개 정도를 시범 운영중입니다. 한마디로 디지털 향토지라 말할 수 있는데,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인물 지리 뿐 아니라 관련 시각자료를 통합적으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향토사 연구자 뿐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동영상 등의 시각자료와 함께 DB화 하고 있는 사진자료를 볼 때 범주나 메타 항목 설정 등에서 사진의 특성이나 속성을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학진 프로젝트로 10여개 대학과 단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한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의 경우, 20세기 민중생활사 관련 구술뿐만 아니라 대상자의 다양한 기록들을 정리, 체계화 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차 사업 후 2차 사업이 학진 기금을 받지 못해 지금은 영남대를 중심으로 미약하지만 존속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구술사, 동영상, 사진 자료를 분류하여 아카이빙 하고 있는데, 체계적인 관리 측면에서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 분류체계가 중요한데, 분류체계 없이 사진 자료를 폴더에 담아, 사용자 입장에서 찾고자 하는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하는 데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의 경우 한국관련 자료를 수집중입니다. LG-연암문고에 소장한 서양인들이 쓴 한국관련 고서 1만 여점을 원문 DB화 하고 그 안에 수록된 그림, 사진을 별도로 서비스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분류 자체가 5개 정도로 다소 추상적이어서 사진이 엉뚱한 곳에 위치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앞서 언급한 곳 외에 10여개 기관들에서 구축한 DB자료를 통합적으로 관리·서비스하는 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운영하는 중추 기관입니다. 이곳이 다른 곳하고 다른 점은 전국의 향토사연구자와 문화원 관계자들을 조사위원으로 위촉하고, 400여명이 넘는 그 분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왔습니다. 얼마 전 이분들을 대상으로 사진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하였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사진아카이브구축을 위해 그분들의 이해를 구하기 자리였습니다. 전국 규모의 조사위원들은 각 지역의 주요한 정보를 알고 있기에 이 분들을 활용한 정보수집의 효과는 기대할만 합니다.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위탁사업체도 선정하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독립기념관, 민속박물관, 국가기록원, 국립박물관, 서울대박물관 등의 국공립 기관에도 중요한 사진자료들이 있는데, 이 중 몇몇 기관에서는 사진아카이브를 기(旣)구축하거나 준비 중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국사 편찬위원회에서 주도적으로 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통해 텍스트 중심의 기록물들을 서비스하고 있지만, 사진자료들은 그 매체의 성격상 별도의 관리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기관에서 기(旣)구축된 사진, 향후 구축될 사진을 통합 관리할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업 관계자들이 사전에 협의체 같은 것을 만들어, 향후 통합관리를 고려한 디지털데이터의 호환성의 문제라든지 검색과 분류체계 그리고 메타정보 등에 대한 표준화 작업등의 문제들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각 기관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인 사진보존의 문제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진이 일반 책자나 유물들과 함께 보관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사진자료를 위한 전용 보존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박물관 정도가 사진에 적합한 온·습도 조절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을 떼어 별치하거나 중성 파일에 싸거나 해서 사진에 맞는 보존관리를 해야 하는데 고비용 때문에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모든 기관이 사진을 DB화 해 서비스하지만 원천 데이터에 대한 보존은 간과하고 활용적인 측면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디지털 붐이 불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작업을 했습니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아날로그에 비해 보존의 문제가 취약하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날로그의 경우 보존 환경만 갖추면 100년 이상 가지만 CD의 경우는 3,40년 밖에 안 가고 그 사이 물리적 손실이나 데이터 손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보존에 문제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노력으로 아날로그 자료의 보존에 힘을 쓰는 것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자료를 복본을 만들어 하나는 보존본으로, 하나는 활용본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 사정이나 관행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붐이 일고 있지만 보존의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 디지타이징을 할 때, 대부분 문서 위주였기에 저용량이었습니다. 때문에 향후 전시, 출판, 원본 대체본으로서의 역할은 못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 하더라도 복원에 대한 표준 설정이 중요합니다.

 

 

근대사진과 식민지 아카이브

 

역사기록물로서의 사진아카이브의 가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역사기록물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곤 하는데, 사진 자료들도 중요한 기록문화 유산으로 인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았지만, 근대 삶의 모습들과 역사 유물 등이 훼손되거나 변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원을 위한 중요한 시각자료로서의 사진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서양에서도 식민지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식민지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자료수집부터 정리, 메타비평까지 같이 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사진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고 활용하는 일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면 좋은데 그런 것들을 한 개인이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 붐들이 일어나면서 사진아카이브에 대한 인식들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국사편찬위라든지 민속박물관이든지 이런 곳에서 사진아카이브가 구축이 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처럼 사진자료가 3만8천여 점이 있지만, 온라인으로 통해 아직 공식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구축도 중요하지만 설계 당시부터 활용적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근대사진아카이브를 구축하면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개인적으로 비평적인 관점에서 ‘왜 근대 사진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유+너머’와 같은 연구단체에선 ‘근대계몽기’에 주목한 연구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자명하게 알고 있는 근대성이 발생한 공간으로 근대계몽기를 설정하고 근대성의 개념들, 어떤 거대 담론이 아니라 학교, 위생 등과 같은 개별적 사안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계보적으로 살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즉 근대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기원의 공간으로서 근대 계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진이 도입된 것은 1880년대 초반이지만 그 이후로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일반대중들에게 수용되지 못하다가, 1900년대를 전후해서 일본사진사들에 의해 개설된 사진관을 중심으로 그리고 1907년 해강 김규진 선생이 세운 천연당사진관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진생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있어 사진관 사진사들은 주요한 사진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표상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당시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다수 사진의 생산주체가 조선총독부였기 때문에 선택과 배제의 논리에 따라 일제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왜곡된 이미지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진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산맥락을 정확히 밝히고 그 메커니즘을 들여다봐야 하기에 아카이브 시스템이 중요해집니다. 지금도 근대 사진들이 인터넷이나 근대 이후 출간 된 책 속에서 볼 수 있는데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예로 역사학 전공자가 논문을 쓰면서 ‘19세기 말엽의 시장’이라고 소개된 사진을 도판으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1930년대 시장 풍경’ 사진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논문 자체가 부실해졌습니다. 사진을 사료로 쓰려면 상당한 검증이 필요한데 사실 이 점이 매우 어렵습니다. 명지대에서 구축하고 있는 ‘한국관련 서양고서 DB’의 경우 수많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행기에 수록된 저자 자신의 사진들도 있지만 19세기말 20세기 초 일본인 사진관에서 판매용으로 제작된 사진들을 사서 자신의 여행기에 수록한 경우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그 사진들을 가지고 서양식 오리엔탈리즘으로 읽어내기도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으로 해석하기에도 어렵기 때문에 생산 주체를 정확히 밝혀내야 다음 단계의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극립민속박물관에서 1906~7년 한국을 찾은 독일인 무관인 잔더가 러일전쟁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사진과 수집한 사진들을 가지고 기증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 잔더가 직접 촬영한 것과 수집한 것을 구분해서 그 사진에 대한 메타 비평이 이뤄져야 합니다.

 

(슬라이드 자료를 보면서 사진설명/ 담뱃대를 들고 있는 한국남성의 사진) 이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 미함대 콜로라도 호에 승선한 문정관의 초상 사진인데, 미국 신문에 실려 많이 알려진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어왔습니다. (다른 사진을 보면서 설명) 이것은 1910년 이전에 발행된 <한국풍속풍경사진첩>이란 제목의 책 표지입니다. 같은 서점에서 합병 이후에도 거의 동일한 편집의 책을 <조선풍속풍경사진첩>이란 표제로 내게 됩니다. 표지 그림을 보면 조랑말을 타고 담뱃대를 물고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사진엽서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기생이 조선여성의 대표적 인물로 표상되었던 것처럼, 담뱃대를 물고 있는 남성들은 조선남성의 대표적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맨 처음 보여드린 사진은 미국 함대에 의해 고용된 종군사진가 펠리스 비토가 찍은 사진입니다. 많은 빈병을 안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이런 포즈는 매우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해 보이는데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인에게 조선인의 긴 담뱃대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게으름의 표상으로 인식되었지요. 동양에 대한 표상을 만듦으로써 서양에 대한 표상이 가능해집니다. 동양에 대한 표상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다시 상투 쓴 남자 사진을 보면, 그의 신분이 문정관이었기 때문에 이양선을 조사하면서 상대를 대할 때에는 나름대로 복식을 제대로 갖추고 만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관모를 벗고 상투가 드러난 채 담뱃대를 들고 찍었다는 것은 서양인들이 원하는 조선의 표상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연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리조제기술이 없었던 조선에서는 귀중한 물건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쓸모없고 하찮은 공병을 보물처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을 통해 인종적 우월성을 미국의 자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상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렇게 서양인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 남성의 대표적 표상인 담뱃대를 물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 일본인에 의해서도 반복·표상됩니다.  


조선 남성의 표상은 야만인, 육체성으로 이어집니다. 일본의 식민지 인류학자인 토리이 류조가 1910년에서 1918년까지 조선인의 정면과 측면 모습을 지역별로 나누어서 신체측정한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은 여러 가지 데이터로 활용 가능하지만 체질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찍혀진 인물의 데이터로 ‘조선인종’에 대한 데이터 설정에 사용됩니다. 표상된 이미지가 실재 전체를 나타낼 수 없듯이 조선인종으로 표상된 이미지가 조선인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모델은 다양한 계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성이 두드러지는 백정계급을 주요 촬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을 조선인의 대표이미지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죠. 토리이 류조는 전후에 발행한 자신의 회고집에서 이 사진에 대해 철저히 과학적으로만 접근했다고 설명하지만 식민담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조선여성의 표상은 기생이 대표적이지만, 한편으론 장옷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조선여성의 사진엽서들이 많이 발행되었습니다. 일본은 서구와는 달리 인종적 우월성을 통해 한일간 위계질서를 성립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필요했고, 근대화의 성취로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를 설정하게 됩니다. 설사 저런 복장으로 다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반복 재생산함으로써 조선을 은둔의 이미지로 표상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찍은 사진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프랑스에서 발행한 한국관련 사진엽서입니다. 서양인들이 쓴 여행기를 보면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쓴 부분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들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재밌는 것은 물동이를 이고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그러다보면 가슴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한 것을 목격하고 찍었다고 추정됩니다. 최근에는 수유를 빠르게 하기 위해 저런 복장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연출해 찍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여행기를 보면 의도적으로 일본이라는 남성 중심적인 입장에서 연출해 찍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러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여 보여주면서, 야만의 이미지를 조선 전체에 덧씌우려는 전략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총독부 촉탁으로 식민지 민속학에 참여한 조사자들도 저런 장면들을 수집하고 보고서에 수록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사진은 전형적인 일본인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산의 근대역사자료관에서 2003년도에 전시한 것인데, 당시 발행된 것이 출처 없이 나온 것이라 복식 전문가가 아니면 시대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진입니다. 다른 사진을 보면 1905년 발행된 한국사진첩이라는 책에 수립된 건데, 왼쪽을 보면 동일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앞의 사진은 최소 1905년 이전 발행된 사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에는 대조적 여성이미지가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얼굴을 가린 사진과 항아리를 들고 가슴을 내놓고 찍은 사진의 인물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물들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반복 재생산됨으로써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들을 판단하기 위해서도 사진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기생 사진입니다. 승무를 추고 있는 기생의 몸짓을 통해 한반도를 표현했습니다. 저희 세대도 어렸을 때 한반도를 토끼 모양으로 설명하는 교육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호랑이로 교육 받게 되었습니다. ‘고토 분지로’라는 일본 학자가 1900년대 초에 조선의 지질조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리수업 시간 때 외운 산맥 이름을 만든 사람입니다. 고토 분지로는 한국 지질학에 대한 논문을 쓰며 한반도의 모습을 토끼로 표현하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나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최남선 등이 이에 대한 반발로 호랑이 모양으로 한반도를 표현하여 대륙을 향해 진출해나가는 진취적 모습으로 표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일제 강점기 때는 한반도가 토끼 형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주먹 모양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어서,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일본을 향해 내뻗는 형국’이라 하여, 대항 논리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근대과학이라 하지만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표상 전략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번 표상이 되면 그 이미지가 장기적 지속되고 그 효과가 뿌리 깊게 남기 때문에, 특히 사진의 표상은 사실과 혼동되기 쉽기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서양인들이 쓴 여행기의 표제로도 자주 사용되었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수사적 표현도 ‘은둔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 것에 불과 한데, 그것이 마치 한국의 대표적 이미지인양 쓰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음 사진은 우연히 책에서 본, 한반도 모양의 형상을 한 일본 무희의 모습입니다. 무희의 신발로 제주도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사진만으로 근대 조선의 이미지가 표상된 것이 아니기에 이처럼 다양한 시각자료들을 통해 어떻게 조선 이미지가 구축 됐는지 탐색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경성사진관에서 촬영한 여성초상사진) 앞서 설명한 사진들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사진사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료이기 때문에 준비해왔습니다. 1998년 <한국사진역사전>을 준비하면서 발굴한 사진 중 하나인데 손바닥만한 작은 크기의 여성초상 사진입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를 보면 ‘경성사진관 스튜디오’라 써져 있는데, 경성사진관은 일본인에 의한 동명의 사진관이 존속했는데 위의 사진관은 한국인이 개설한 사진관입니다. 1926년 <조선일보>는 조선 여성의 직업을 연재하면서 여성사진가인 이홍경을 소개했었는데, 그녀가 남편과 함께 인사동에 사진관을 개설했다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이 기사를 근거로 ‘이 사진이 이홍경이 찍은 사진이다’라고 사진사에 기술이 되어 있는데 사실은 남편인 채상묵이 촬영 주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면 이홍경은 이미 19210년에 본인 명의의 부인사진관이라고 사진관을 개설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인사진관’ 로고가 찍힌 사진관 사진을 구하게 된다면 사진사의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고, 미술사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기술되어 있기에 저런 자료 하나가 사진사를 바꿀 만한 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사진교육기관은 1911년경 3~6개월 속성과로 개설한 YMCA 사진과를 최초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홍경은 1926년 최초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근화 여학교의 사진학과에서 사진 교사로 근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근대사진아카이브 구축 프로세스

 

1. 디지타이징 프로세스

 

1-1. 디지타이징 대상 수집_

 영인본이나 원문 DB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1-2. 사진이미지 스캔

 영인본을 통해 출처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최근 국립중앙도서관 원문DB를 많이 해놓고 있기에 관심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검색을 해서 원문들을 보면서 빌려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있는데 빌려 올수 있는 것으로 스캐닝 작업을 하고 이게 책이기 위해 한계가 있지만 사진, 필름 같은 경우는 오히려 사진을 소장한 기관에서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경향 신문 경우 5~600만 점 정도의 사진이 소장되어있습니다. 3개월 중 2백만 장 정도 봤는데 3만 7천 여 점의 민주운동 관련 사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경향 신문이 열악해 4층이 기계실이라 냄새가 올라오는데 사진이 화학약품에 취약한데 그런 상태에 있고, 밀폐된 공간인데 에어컨을 돌림에도 불구하고 매우 덥습니다. 이처럼 사진을 소장하는 기관의 시설이 중요하지만 그 필요성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물관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박물관도 보존을 한다고 하지만 그냥 캐비닛 사진 박스에 넣어 보관을 했고, 얼마 전부터 유물을 넣는 수장고에 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유리 건판이다 보니까 사진끼리 눌러 붙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소장된 자료들에 대한 보존의 문제 . 때문에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보존의 필요성이 있지만 하지만 그것을 감당할만한 기관이 없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디지타이징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디지타이징을 할 때 다른 것은 몰라도 전시나 출판은 할 수 있게 TIFF 파일로 해서 50MB 이내로 받는 것으로 그나마 유지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제공하는 DB들의 화질이 비교적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DB 기준들을 시급하게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3. 메타데이터 입력

메타 데이터는 사진을 소장하는 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른 항목으로 입력됩니다.

 

1-4. 메타데이터 교정 및 검수를 해야 하는데 저희는 메타 데이터를 입력하면 웹사이트 상에서도 볼 수 있지만 책자 형식으로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색인집을 만들어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1-5. 분류체계 수립은 분류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사실 자료의 양과 폭이 방대하기 때문에 분류체계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하는 것은 근대 사진아카이브의 방대한 분량이기에 분류체계에 대한 고민 필요했습니다. 근대 사진아카이브 만의 인문학적 분류체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1-6. 분류코드 입력 및 파일업로드하고 제대로 검색 가능한지 등의 웹 검수 과정이 있습니다.

 

 

2. 분류체계 및 메타항목 설정

 

근대사진 분류 체계에 대해 말씀드리면 기록학에서는 개별적 사진을 아이템이라 부르고 컴퓨터에서 각 주제별로 모아 폴더에 넣는데 아이템 단위의 상위 항목을 파일이라 부르고 시리즈, 그룹으로 계층별 분류로 쓰인다. 대분류-중분류-소분류의 표현을 씁니다.


총19개 대분류와 85개 중 434개 소분류로 나뉘는데 그 기준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진관에서 생산된 기념사진관 생산류 그다음 일반 대중 아마추어 사진가, 공식적으로 출판된 책자였기에 공식적 기관에서 생산주체였기에 조선총독부의 조사사업과 관련된 사진 생산이 많았습니다. 식민지 과학자들이 참여해 조사사업, 그 중 사진 작업이 진행이 되었기에 근대 과학의 분과 학문의 단위별로 나눠봤습니다.    


토목, 고고, 민속 지리 지질 생물 등 사회학적 접근 방법에 따라. 예술 종교 문화 정치경제 등 도시기반시설인 교통, 통신 항목 등...근대 한국적 특성을 나타내는..대한제국황실과 독립운동 도 포함됩니다. 사실 이렇게 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관련 사진을 할당하는데 오류도 있었고 포함 안 된 부분도 있었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사진 전공했다고 하지만 사진이 생산된 분야가 이 분야이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지식 없이 사진을 분류한다는 데 무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고 ,각 부분마다 전문가들이 분류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사진자체가 예술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시작한 것이기에 학제간 연구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토목에서도 근대 건축, 전통 건축 등으로 나누고. 검색을 위해 키워드 부여해야 하는데 그 때 그 때마다 부여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정리해서 일련의 분류체계를 잡아 봤습니다. 이런 체계를 잡는데 2년의 시간이 소요 되었고 잡았고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분류 체계가 불필요한 게 아닌가 , 검색을 위한 메타 데이터 항목을 풍부하게 해서 사용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닌가 하지만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선 서로 분류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분류로 단위로 구분 된 것은 주제로 하나의 책으로도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활용도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 시각예술과 관련된 자료들이 나오는데 특히 회화 선전 도록이라든지 미술품 관련된 도록들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미술 용어 하나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검증해낼 길이 없기에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공동작업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메타항목만 뽑아 봤습니다. 근대의 자료들이 일본식 한자나 일본어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제목이 시대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한글로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발행 주체인 촬영자, 그리고  여러 가지 주제가 있겠지만 아까 분류 항목에 넣었던 각 항목들이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어디서 누가 찍었는지에 대한 장소, 날짜, 어떤 기록물과 달리 프로세스를 통해 시대를 추정한다거나 특히 예술사진은 어떤 프로세스로 프린트 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에 인쇄 상태로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반쪽짜리 감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원본타입이 뭐냐에 대해, 칼라유무, 확대와 축소에 따라 의미 맥락이 달라지기에 프린트 사이즈, 소장처, 출처, 해설 키워드 정보가 중요합니다.

 

 

전시 및 출판콘텐츠로서의 사진아카이브

 

이러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근대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했고, 이 자료를 갖고서 활용해서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중요성이 제기가 되서 마침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다큐먼트라는 전시를 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저희는 다른 작가 중심 전시와 달리 동시대 작가들이 아카이브적인 스타일을 쓰는 작가들만 선별했습니다. 사진을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의 외양을 전시 디스플레이에서 보여주자 해서 ‘구보씨 박람회에 가다’라는 파트를 제가 맡아서 전시를 했습니다.


사실 ‘구보씨 박람회에 가다’를 제가 맡았을 때 근대사진아카이브가 방대한 내용의 사진을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을 잘 들어내는 것이 박람회이기 때문에 그 형식을 따랐습니다.

 

 

1. ‘구보씨, 박람회에 가다’(<다큐먼트전> 제1부, 서울시립미술관, 2004)


이 연표는 매일신보를 1년 넘게 보면서 박람회 관련된 기사만 복사하고 전시 준비기간 한 달 동안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에 엄청난 수의 박람회가 열렸고 포착되지 않은 작은 규모의 것들도 많았습니다. 규모가 큰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것이 1915년 경복궁에서 열렸던 조선물산 공진회가 있고, 1923년 역시 조선부업흥공진회, 1929년 조선박람회, 1940년 조선대박람회는 청량리역 근처에서 열렸습니다. 이들 박람회의 출품부문에서 공통적인 부문을  뽑아서 보여주었습니다.

 

흔히 전시가 끝나면 그 결과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전시콘텐츠의 개념으로 전체 과정을 다시 볼 수 있게 CD타이틀을 만들었습니다. 전시됐던 전체 내용과 전시장 풍경, 동선, 관련 자료들을 모두 포함한 CD를 만들었습니다. 이 CD는 전체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박람회 읽기’는 박람회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들, 즉 외국 사례는 어떤 박람회가 있었고 우리나라는 어떤 박람회들이 열렸는지, 그리고 박람회 성격에 대한 내용과 박람회 연보 등을 실었고, 각종 박람회 포스터 등을 수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포스터에 기생이 쓰였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대표 이미지로 기생의 이미지를 쓴 것이지요. 일제 남성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할 식민지 조선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같은 사진들을 박람회 관련 도면과 포스터 등과 함께 수록해 박람회에 대한 이해를 도왔습니다. 두 번째 ‘박람회 둘러보기’에는 전시장 평면도와 디스플레이 및 전시장 풍경, KBS 디지털 미술관 프로그램 링크, 기획의도 등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박람회 구경하기’에는 ‘본전시’와 ‘특별전시’로 다시 나누어서 정리했습니다. 특별전시 중 학술인류관은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에 종사했던 식민지 학자들이 조사과정에서 촬영한 조선인들의 사진들을 모아 그 사진 속에 드러난 식민담론을 읽어보고자 했습니다. 토리이 류조는 각 지역의 인물들을 정면·측면 그리고 성별로 나눠 촬영했으며, 이 사진자료들은 방대한 양이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아키바 다카시는 무속 관련된 조사를 담당했었는데, 마치 미국의 유명한 패션사진가 리차드 아베돈의 인물사진의 원형을 보는 듯 합니다. 동시대 많은 예술 사진에서 사용하는 형식들이 근대 학문이라든지,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사진적 장치들을 예술 맥락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엿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스트 잔더의 사진은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많이 담겨 있고 동시대 유행하는 잔더의 계보를 이끄는 베허스쿨 같은 경우도 노골적으로 제국주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키노 다케시의 경우 고고학 조사에 참여했기에 인물이 중심은 아니고 유물이 중심이었는데, 거기에서 인물은 유물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한 스케일로 등장합니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표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세련되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면 조선인은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진에서조차도 일본인 주체와 조선인 타자의 표상이 다르다는 것을 별도로 구성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비교사진관 같은 경우 오늘날 광고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고 1960~70년 개념 작가들이 주로 썼던 형식인데, 일제시대 때부터 벌써 비교사진술이 갖는 활용적 측면들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고종 황제와 메이지 천황의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구(新舊)를 비교한다거나 시정사업의 전후(前後)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식민지배를 통해 조선이 근대화되고 있다는 정당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전시’ 부분에도 여러 내용의 사진들이 있지만 도시계획 사진 같은 경우 비교사진술의 방법을 통해 도시 계획 전과 후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대문 앞에 소가 누워있는 이 사진은 자주 보아왔던 장면입니다. 이 사진은 남대문 옆으로 뚫린 도로와 그 앞을 지나가는 전차 사진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는 전근대적인 교통수단을 표상화한 것입니다. 신구를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갖다 놓고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한 계획 하에 찍힌 사진들입니다. 실제의 참모습이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형무소 수감자 사진은 국사편찬위에서 빌려와서 전시한 것인데 전형적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수형기록표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정면·측면을 찍는 것은 한사람을 표상하는데 정면만으로는 불확실하기에 옆면을 함께 촬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상인물의 정확한 표상을 위해 여러 면을 찍을 수는 없었는데, 효율적 관리를 위한 방법뿐만 아니라 경제성도 중요하게 고려되었습니다. 두 장의 이미지로 사람의 신체적 정보를 구할 수 있다는 이러한 사진 형식은 1880년대 파리 경시청에 있었던 알퐁스 베르티옹이란 사람이 고안했던 신체측정사진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이용이 된 결과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 근대사진의 지형을 보여줬다면 향후로는 좀 더 주제별로 밀도 있는 접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가 끝나고 2개월 뒤에 어류사진들을 정리한 전시를 열었습니다. 어류학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로 문외한이었지만 처음부터 어류학회에서 어류의 분류체계나 어류 이름 등을 고증 받으려 했으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근대사진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서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전시였습니다.

 

 

2.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아카이브북스, 2005)


이 책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한 계간지에 1년 반 넘게 연재했던 것을 정리한 것으로, 근대의 표상 중 가장 왜곡된 표상이 기생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인들은 주체의 초상과 타자의 초상을 달리 표상해왔습니다. 타자의 초상은 신체측정사진술이 정례화 되는 1880년대 와서 만들어졌습니다. 서구 부르주아의 초상을 표상하는 방식은 타자의 초상 방식과 달랐는데, 지금 보시는 사진은 1860년대 프랑스의 부르주아계급들을 촬영한 초상사진입니다. 타자의 초상과는 달리 정면상으로 촬영하기 않고, 대상 인물의 존엄이라든지 개성을 되도록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것에 비해 신체측정사진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보 전달 위주의 촬영 방식입니다. 시각적 효율성을 위해 인물이 갖고 있는 신체적 정보를 한눈에 확인하기 위한 방식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진들은 일제시기에 유행한 사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찰서 신상명세 사진에서 서양인의 경우 눈동자 색깔이나 머리 색깔 등은 알 수 없기에 텍스트로 표현해 놓기도 했습니다. 귀도 지문처럼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기에 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증명사진 찍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범죄사진 아카이브가 파리에서 활용 되었지만 보관과 비용 문제 그리고 표상의 확실성 등의 문제 때문에 1900년대로 넘어오면서 지문으로 대체되거나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진 장치 등을 일제시대 종로경찰서 등에서도 채택했으며, 이런 사진 찍는 장치를 구입해 20분이면 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는 기사도 종종 보입니다.


이것이 베르티옹 시스템의 신상카드인데, 이 사람은 우생학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사진을 활용했는데 유사과학으로 판명 됐지만 당시 수많은 유사 과학들이 사진을 통해 학문적 검증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걸 통해 사진의 객관성을 상호보완 하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객관성이 있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객관성이 부여되는 그런 매체다. 뒤에 있는 건 감광속도가 늦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는 지지대입니다. 일러스트로 쭉 촬영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02년 ‘부르다레’라는 프랑스 인류학자가 논문을 쓸 때, 벌써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신체측정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이름, 나이들이 적혀 있습니다. 지금 확인한 양보다 방대한 양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라고 알려진 사진입니다. 이런 형식 안에 들어오면 우리에게 신화화 된 인물은 사라지고 범죄자로 표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문 번호 등 수많은 메타 정보가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장인데 앞에는 성명, 연령 등 뒤에는 이력, 현주소, 본적, 범죄이력 등이 적혀 있습니다. 지문은 없고 지문 번호만 있어서 따로 관리한 것 같습니다. 다음 사진은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기생 프로필 사진과 이력인데 형식이 유사합니다. 경성신문사에서 제작을 했습니다. 전국의 기자들을 조사원으로 동원을 해서 전국의 기생을 한 권의 사진첩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또 다른 사진은 병인양요 때 촬영한 것이라고 추정되는 사진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초로 한국인을 찍은 사진인데, 이 때도 증명사진을 찍듯 흰 배경으로 해서 찍었습니다.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만들면서 사진 유형별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복식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전신상, 전신좌상, 칠부신상, 반신상 등으로 촬영되는데, 단발령 때도 있었지만 사진도 사진 프레임에 의해 짤리면 신체 일부가 짤린다는 초기 인식이 있었으나 점차 프로필 사진으로 인물사진이 변화되어 갑니다.


거울을 보고 있는 기생의 뒷모습 사진도 많이 생산되었는데, 일본에서 제작한 게이샤 사진을 차용해서 촬영한 것입니다. 다음은 명성왕후 사진이라 알려져 논란이 된 사진인데 배경이 젠쇼 에이스케의 사진콜렉션에서 나온 기생사진의 배경과 유사하죠. 거의 같습니다. 촬영장소는 사진관인데 명성왕후를 사진관에 데리고 와서 찍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다음은 무라야마라는 일본 민속학자의 사진콜렉션에서 나온 사진인데, 기생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춤, 음악, 기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여성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신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기생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담당했던 역할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배제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사진 2장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데 첫 번째 사진은 기생들이 연주를 하고 있는 장면이고, 다른 사진은 일반 여성들이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  동일 인물이 상황만을 바꾸어서 촬영한 연출된 사진입니다.


사실 기생이란 계급은 갑오경장 이후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기생들을 관리하기 위해 기생 조합을 설립하고 이 조합에 가입해야 기업(妓業)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는데 그것이 권번입니다. 조선미인보감이 만들어지기 전 이미 매일신보에서 ‘예단 1백인’이라는 조선의 예인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소개되었는데 거의 90%이상이 기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미인보감의 선행 버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보감에 수록된 어린 나이의 학생입니다. 3,4년 간 기생 수업을 받고 기생 활동을 할 수 있는 어린 학생입니다. 1918년 조선미인보감이 발행 됐는데 당시 복식을 보면, 다양한 악세사리 같은 것을 걸치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대부분 복식의 경우 신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무용 같은 경우에도 다른 권번들과 경쟁하기 위해 일본의 무용이라든지 서구 무용을 수용해서 다양한 복식의 복장을 하고 무용하는 장면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사진엽서에 기생이 익명으로 돼있는데 후반부에 기생이 유명해져 실제 자기 이름을 박은 엽서들이 발행이 됐었습니다. 권번은 지금의 연예기획사라 볼 수 있습니다. 평양의 여학생인데, 한동안 여학생과 기생이 복식이나 악세서리 등으로서 경쟁 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최승희로부터 신무용을 언급을 많이 하는데, 기생 권번에서 그전부터 신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평양의 유명한 기생 권번은 조선의 유명한 명소로 알려져서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들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켜줄 것으로 알려줄 대동강에서 꽃배를 타고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 타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일부 일본인들은 그 관광을 위해 돈을 많이 모으기도 했습니다.

권번의 내부 풍경인데, 전문적인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방 안을 공연 무대로 썼는데 뒤의 배경에는 대형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배경그림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치 1980년대 쇼쇼쇼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정된 시간이 넘어 준비해온 사진자료를 보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강의내용과 관련해서 아래의 자료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구보씨 박람회를 가다>(‘다큐먼트’전 도록 및 CD타이틀, 2004)

<유리판에 갇친 물고기>(아카이브북스, 2004)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경민, 아카이브북스, 2005)

‘역사기록물로서의 사진아카이브 구축과 활용방안’, 이경민, <역사자료로서의 사진자료의 수집·정리와 활용>(제29회 국편 사료조사위원회의 발표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2006.5.25

 

* 강연 관련 자료 및 프로그램 녹화 내용은 인사미술공간 아카이브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Tag : , ,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BLOG main image
이것저것 끄적끄적 들락날락 거리며 주서모은 미술이야기
 Notice
댓글과 방명록 활성..
동영상 문제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32)
art-translation (35)
art-foto (14)
London life (12)
art+design (1)
art-publication (24)
Q&A (19)
moji-story (17)
Ideas (2)
good voices (3)
culture+ (5)
 TAGS
국제다원예술축제 올리버 W. 홈스 Sr 게스투스 문화복원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최봉림 foil_iann 행위예술 미니멀리즘 매거진 P 미술과 담론 전시소개 비디오설치 아르코전시 비트겐슈타인 최정화 런던플랫청소 버지니아 총기난사 진중권 생계 미야자키 기요시 푼크튬 문화 예술인 스프링웨이브 도큐멘타 이안매거진 카셀 가나 갤러리 런던 스튜이오 사이먼 놀포크 언어철학 번역 탈루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팔레 드 도쿄 논제 작성 포토넷1월호 바즐아트 에르노트 믹 포토넷 데지르 들롱 포일 이안 인터뷰 vol.3 foil iann 컬쳐뉴스 창작활동 소득 런던 탑 한국역사사진 바즐아트페어 트린T민하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국사진역사 인쇄 브라이튼 IANN 강수미 파리호텔 가인갤러리 이형구 자음암호 모뉴멘트 런던대학캠퍼스 단락쓰기 고급미술 사진아카이브 베니스비엔날레 필름 2.0 상대주의 바네사 비크로프트 김윤호 1954년대구사진 게으른 오후 대필논란 이경민 김영준 아우구스트 잔더 영국정원 아트페어 포토런던 사회적 초상 남자친구의 대학별 반응 화랑해외진출 인도 아티스트 김한용 국가적 정체성 캠든아트센터 비엔날레 이지누 한국사진의 역사 포일이안 천경우 아라리오 서울 서울시 복원 최재균 전통문화 반이정 조선시대기생 서양식 공간예절 Evil Monito 런던사진
 Calendar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Entries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영화(퍼온글)
이안(IANN)출간 2년 맞이 특별할인행사! IA.. (2)
필름 2.0 이안매거진 기사
예술사진 [이안] 매거진 2008년 가을/겨울..
잡지는 취향이다! 한겨래신문 (1)
Q&A: FOIL _ IANN for Evil Monito magazine
포일_이안 (FOIL_IANN) 인터뷰기사 @ 포토.. (2)
lost in translation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에 대하여 (..
포일_이안이 대형/인터넷 서점에 출시!
 Recent Comments
source.....찾는거..
이미연 - 2009
벌거벗은 임금님동화..
montreal florist - 2009
한결같은 관심과 응..
mojikim - 2009
보일라랑 그라픽을..
+bueno - 2009
모가 빠르단? ㅎㅎ
mojikim - 2008
빠르다 빨러.........
백작가 - 2008
앞으로 보시고..더..
mojikim - 2007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종점 - 2007
축하하우!! 정말..
lullaby - 2007
12월달이면 대형서점..
mojikim - 2007
 Recent Trackbacks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cheap databases eng..
cheap databases
buy databases lean
buy databases
buy databases contact
buy databases
buy databases tempe..
buy databases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cheap databases eas..
cheap databases
database empire raise
database empire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Archive
2009/10
2008/11
2008/08
2008/01
2007/12
 Link Site
이동우의 북세미나
 Visitor Statistics
Total : 185,982
Today : 2
Yesterday : 5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