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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 해당하는 글(2)
2007.05.01   미니멀리즘 - 현전의 기하학(펌글)
2007.02.09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ㅣ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니멀리즘 - 현전의 기하학(펌글)
글. 진중권

미니멀리즘 - 현전의 기하학 현전의 기하학 미니멀리즘은 도처에 있다. 미술관에서 그것은 하나의 예술언어이며, 백화점에서 그것은 상품의 디자인이며, 거실에서 그것은 인테리어의 원리다. 우리는 이미 '심플한 디자인'에서 미적 매력을 느낀다. 물론 이런 식의 수용은 미니멀리즘이 애초에 설정한 목표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8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은 현대인의 지각방식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처음 등장한 60년대에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예술가 그룹 밖의 대중으로부터 그것은 널리 외면당했다. 왜 그랬을까?

'비인격성' 때문일 게다. 대중은 예술에서 서정을 기대한다. 폴록의 작품만 해도 '추상적'으로나마 거기서 작가의 내면의 '표현'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에서 대중이 보는 것은 공장에서 기계로 뽑은 듯이 보이는 물건뿐이다. 작가의 개입이 배제된 익명성, 기하학적 형태의 반복성. '모듈'로 진행하는 연쇄성이 그들에게는 그저 지루함과 단조로움일 뿐이다. 심지어 그린버그도 미니멀리즘은 "느껴지거나 발견된 것이 아니라 뭔가 연역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미니멀리즘에서 작가의 인격은 사라진다. 토니 스미스가 '죽다'(1962)를 제작할 때 한 일이라곤 전화로 공업사에 작업지시를 내리는 일뿐이었다. '5월 25일의 대각선'(1963)을 위해 단 플라빈은 그저 시장에서 산 형광등을 전시장 벽에 비스듬히 걸어놓았을 뿐이다. 칼 안드레는 벽돌을 사다가 바닥에 깔아놓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해 트럭에 실어 날랐다. 때는 마침 롤랑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시기였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미니멀리즘'을 철저하게 아메리카의 산물로 본다. 구성의 포기는 폴록의 '올오버'(all over)에서 물려받은 것이며, 단순성의 효과는 뉴먼의 '전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공업용 재료의 사용은 워홀의 오브제 전략을 연장한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전후 미국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액션페인팅, 색면추상, 팝아트가 미니멀리즘의 세 갈래의 흐름이 미니멀리즘 속에서 하나의 물줄기로 합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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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의 대표자 도널드 저드는 원래 예술에서 환영주의를 없애려는 모더니즘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서 그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강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반(反)환영주의는 그린버그의 것보다 철저했다. 환영 효과를 없애려면 대상성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 자체, 즉 작품을 부분들의 관계로 짜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에게 유일하게 흥미있는 것은 "전체로서의 사물, 그 전체성의 특별함"이었다.

하지만 반(反)관계주의만으로 환영주의를 없앨 수는 없다. 그림이 그림으로 남는 한 여전히 환영효과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려면 작품이 아예 '사물'이 되어 실제의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 조각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제 아무리 추상적이어도 조각 역시 환영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영주의를 완전히 없으려면 작품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그냥 '사물'이 되어야 한다. 액자나 받침대로 일상 공간과 단절되지 않은 '물건'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 사람들은 물감에서 자연을 보았다. 돌덩어리를 아름다운 인체로 보았다. 하지만 미니멀리즘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도 가리키지도 않고 그저 눈앞에 덩그마니 놓인 하나의 사물을 볼뿐이다.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그것이다." 이 순수한 '현전'(presence)이 바로 미니멀리즘의 특징이다. 모더니즘의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은 여기서 극한에 도달한다. 환영을 배격하려 한 모던의 강령은 이 지점에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지우는 포스트모던으로 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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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집착한 저드와 달리 로버트 모리스는 그 사물을 보는 '지각'의 문제에 집중한다. 그가 전시장에 설치한 L-자(字) 모양의 철제빔들은 실은 정확히 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놓인 위치나 자세에 따라 우리 눈에는 그 모양이 서로 달라 보인다. 우리의 이성은 그 세 개의 빔이 같은 모양이라고 말하나, 우리의 지각은 그것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이 둘 중에서 세계가 주어지는 근원적인 방식은 무엇일까? 모리스에게 더 근원적인 것은 지각이었다.

이는 물론 당시에 영어로 번역된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잔은 우리의 일상적 지각이 원근법적 지각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눈을 점령한 원근법에 맞서 지각의 원초적 양상을 회복하려고 분투했다. 모리스 역시 우리의 눈을 이성의 지배에서 구해내 원초적 지각의 현전을 확보하려 한다. '아는 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의 세계', 즉 최초 지각의 직접성을 확보하는 게 그의 과제였다.

저드가 반(反)관계주의적이고, 모리스가 현상학적이라면, 칼 안드레는 유물론적이다. 그는 아마도 사상 처음으로 조각을 수평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무, 그 다음에는 벽돌, 그 다음에는 금속으로 된 정방형의 판을 바닥에 깔아놓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종종 관객들로 하여금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금속이 가진 물성(物性), 그것의 촉감과 무게를 직접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그는 물리적인 속성에서 비롯되는 감각의 현전을 강조했다.

안드레는 자신의 작품을 "무신론적, 유물론적, 공산주의적"이라 불렀다. '무신론적'이라 함은 작품에 초월적 의미층이 결여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유물론적'이라 함은 그의 작품이 재료의 물성에 바탕으로 두고 있음을 의미하고, '공산주의적'이라 함은 그의 작품을 이루는 목재, 벽돌, 금속판과 같은 요소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는 뜻이리라. 나아가 누구나 살 수 있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된 자신의 작품이 '평등주의'를 구현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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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플라빈은 조각을 '형'이라기보다는 '공간'의 예술로 이해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색채의 형광(螢光)이 주위의 공간을 물들인다. 인상파 화가들이 물감을 가지고 했던 실험을 그는 형광등을 가지고 연출하는 셈이다. 플라빈은 공간을 물들이는 빛의 효과 속에서 '숭고함'을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색면추상 화가들의 초월적 숭고와는 다른 세속적 숭고, 이른바 현대의 '기술적 숭고'를 본다. 플라빈은 이를 "현대의 기술적 물신(物神)"이라 불렀다.

유물론적 예술관을 가진 안드레와 달리, 솔 르위트는 탈물질적 예술관을 구현하려 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아이디어 혹은 컨셉트다." "아이디어는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기계다." 이는 특히 그의 '월 드로잉'(wall drawing)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작품의 컨셉트만 제공하고, 거기에 맞춰 벽에 드로잉을 하는 작업은 고용된 직공들의 손에 맡겼다. 이로써 작가의 인격은 사라지고, 작품은 불현듯 공공미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은 서서히 개념예술로 전화하기 시작한다.

이들 모두를 묶어주는 공통성은 무엇일까? 이들은 작가의 예술적 개입을 배제하고,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의 재료를 사용한다. 그 결과 작품이 전체성, 반복성, 상사성과 같은 형식적 특성을 띠게 된다. 또한 이들은 환영보다는 '오브제'를, 형태보다는 '공간'을, 작가보다는 '수용자'를 중시한다. '오브제-공간-수용자'로 이루어진 이 삼각형이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이룬다. 비평가 마이클 프라이드가 이들을 "연극적"이라 비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저 삼각형은 사실 '배우-무대-관객'의 관계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흔히 미니멀리즘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생각도 없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사물의 근원에 도달하기 위해 형의 복잡성을 단순한 기하학으로 환원시킨 것이 아니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이 깊다면, 미니멀리즘의 기하학은 얕다. 그것은 지성으로 본 깊이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표면을 지향한다. 기하학과 현전성의 모순적 만남. 바로 여기에 미니멀리즘의 본질이 있다.



참고문헌 David Hopkins, After Modern Art 1945-2000, New York 2000 Matthew Collings, This is Modern Art, London 1999 Jonathan Fineberg, Art since 1940 Strategies of Being London 2000 Thomas Crow, Art in Context, London 1996 Ingo F. Walther(hrs.), Kunst des 20. Jahrhunderts, Koeln 2000 Heinrich Klotz, Kunst im 20. Jahrhunderts, Muenchen 1999 Werner Hofmann, Die Grundlage der modernen Kunst, Stuttgart 1987 그림설명 1 Donald Judd | Untitled | 1968 Enamel on aluminum 22 x 50 x 37 inches Guggenheim Museum Panza Collection 2 Robert Morris | Untitled (Corner Piece) | 1964 Painted plywood and pine 72 x 102 x 51 inches overall Guggenheim Museum Panza Collection 3 Dan Flavin | the nominal three (to William of Ockham) | 1963 Fluorescent light fixtures with daylight lamps each fixture 6 feet 72 x 212 1/2 x 5 inches overall. Guggenheim Museum Panza Collection

출처:http://skasuz.nawow.net/bbs/zboard.php?desc=asc&id=7&no=248&sc=on&select_arrange=headnum&sn=off&sn1=&ss=on
Tag : 미니멀리즘,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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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ㅣ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ㅣ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사건의 연속’과 ‘모험’ 팬터지 선구자

어릴 때 한 번·어른 돼서 또 한 번 읽어야 할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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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위의 체셔 고양이는 앨리스 앞에 나타나 미소 짓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한 장면. 
처음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게 언제였을까?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게다. 다시 이 책과 마주친 것은 10년 전 베를린의 길거리. 좌판에 널린 헌 책들 틈에서 우연히 루이스 캐럴 전집을 발견했다. 별 생각 없이 이리저리 넘겨보다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주 가끔은 일생에 반드시 두 번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어릴 때에 한 번, 자라서 또 한 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그런 책이다.




눈부신 황금빛 오후

“눈부신 황금빛 오후에 우리는 나른하게 미끄러져 가네. 서툰(little) 솜씨로 노를 저으려는 부산한 작은(little) 팔들. 놀라운 곳으로 가자며 재촉하는 작은(little) 손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시(序詩) 중)

앨리스의 환상은 1862년 7월4일 ‘아이시스’라는 영국 런던 템스 강의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위에서 탄생했다. 루이스 캐럴은 그 빛나는 날의 기억을 시로 적어 남겼다. 시 속에서 ‘리틀’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은 보트 위에 탄 것이 리델(Liddell) 가문의 세 꼬마 아가씨라는 것을 암시한다.

“어느덧 상상의 샘물이 마르고, 이야깃거리도 사라져… ‘나머지는 다음에’라고 하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외쳐댄다. ‘지금이 다음인 걸요!’”(서시)


구멍 속의 세계로 들어간 앨리스의 모험담도 꼬마들의 성화에 못 이겨 즉흥적으로 만든 모양이다.

“그날 나는 내 주인공을 토끼 굴로 들여보냄으로써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 해도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직 아무 생각도 없었다.”(서시)

그날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었나 보다.

“평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그날 소풍을 아직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지요. 게다가 바로 그 다음날부터 나는 그것들을 써달라고 아저씨를 무척 조르기 시작했거든요.”

동화 주인공의 모델인 진짜 앨리스의 말이다. 2년 뒤인 1864년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캐럴로부터 글로 씌어진 그 이야기를 선물받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이다. 캐럴 이전까지 동화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른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캐럴 이후에 비로소 아이들은 자기들 세계를 갖게 되었다.

몽환적인 이야기꾼이면서 동시에 논리학자였던 루이스 캐럴. 
캐럴과 도지슨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1832~98). 영국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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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가르치던 교수로, 수학에 관한 몇 권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중에 꾸며낸 이야기로 드러났지만, 이 가짜 일화는 동화 작가 캐럴과 수학자 도지슨의 이중성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앨리스의 모험을 읽은 빅토리아 여왕이 루이스 캐럴에게 다음 저서를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여왕이 받아본 이 동화작가의 후속작은 ‘행렬의 기초론’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국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도지슨은 부제(副祭)서품을 받은 성직자였다. 당시는 빅토리아 시대로, 보수적 왕조의 모럴로 무장한 그는 공공연히 소녀애를 드러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사내애들은 빼고).”

카메라를 좋아하여 가끔은 소녀들의 옷을 벗겨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리델 가문에서는 나중에 갑자기 캐럴과 앨리스의 만남을 거절하는데, 그 이유에 관한 설이 분분하다. 그중에는 캐럴이 앨리스의 나체 사진을 찍었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도 있다.


도지슨은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같은 대학 학장(앨리스의 아버지 리델)의 자유주의적 개혁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보수주의자가 보트 위에서는 갑자기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가 캐럴이 되어 들려주는 동화 속에서 의미는 사라지고, 논리는 뒤집히고, 법칙은 물구나무선다.

루이스 캐럴 연구자 장 가텐노가 “성직자와 어린 소녀들을 사랑하는 남자. 팬터지와 지루한 수학교수. 몽환적인 이야기꾼과 논리학자. 이 정반대되는 성향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캐럴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이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다.

거울 뒤의 앨리스

그 해답을 속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7년 뒤에 발표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에서 앨리스는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은 좌와 우를 뒤바꿔놓는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혹시 거울에 비쳐 뒤바뀐 논리의 세계가 아닐까? 앨리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환상 소설의 선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앨리스의 그것은 가령 ‘해리 포터’의 마술적 팬터지와는 다르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의미를 뒤집어놓음으로써 만들어낸 논리적 팬터지이기 때문이다.

   
캐럴리 쓴 앨리스 연작 동화의 모델이 된 앨리스 플레장스 리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도 부조리한 인물들이 나온다. 예컨대 주정뱅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주정뱅이. 생텍쥐페리는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이상한 어른들의 부조리를 풍자한다. 하지만 앨리스의 세계에는 어른과 아이의 대립이 없다.


나무 위의 체셔 고양이가 말한다.

“너와 나를 포함해서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미쳤음에 틀림없어.”

따지는 앨리스에게 체셔 고양이는 말한다.

“넌 틀림없이 미쳤어.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올 리가 없지.”


‘도플갱어’라 하던가? 거울 속의 나라는 이성의 세계와 나란히 존재하는 부조리의 세계다. 캐럴의 팬터지가 보여주듯 부조리는 좌우가 뒤바뀐 합리성이고, 철학자들이 알아낸 것처럼 합리성은 부조리의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일 뿐이다. 캐럴에게 부조리는 풍자해야 할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외려 그것은 모든 합리적인 것이 솟아나는 원천과 같은 것이다. 캐럴의 찬미자 앙드레 브르통의 말이다.

“부조리한 것을 통해 정신은 그 어떤 어려움에서라도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놀이의 명인

캐럴의 책은 온갖 말놀이로 가득 차 있다.


생쥐가 말한다.

“내 이야기(tale)는 길고 슬픈 것이란다.”

앨리스는 이렇게 대꾸한다.

“당신 꼬리(tail)가 진짜 길기는 길군요. 그런데 왜 꼬리가 슬프다고 말하는 거죠?”


다음은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패러디. 가짜 거북이가 바다 학교의 과목을 소개한다.

“먼저 비틀기(reeling)와 뒤틀기(writhing)를 배우고.”

이는 일반 학교의 정규 과목인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를 뒤틀어놓은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말놀이에도 능했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부터가 벌써 자신과 어머니 이름의 철자를 바꾸어 만든 애너그램(anagram)이다. ‘거울 뒤의 앨리스’의 마지막에 붙인 헌시를 보자.

“맑은 하늘 아래 보트 하나가/ 천천히 꿈같이 떠가는/ 어느 7월의 저녁/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그란 눈과 쫑긋한 귀를….”

우리의 삼행시처럼 각 행의 앞 자들을 따면 ‘Alice pleasance Liddell’이라는 이름이 된다. 이런 것을 ‘아크로스틱(akrostic)’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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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이 발명한 말놀이도 있다. 그가 만든 ‘더블릿’이라는 놀이는 낱말의 철자를 하나씩 바꾸어서 목표한 낱말에 도달하는 게임이다. 가령 생쥐의 머리(head)를 꼬리(tail)로 바꿔보라. 이 마술의 비법은 이것이다. HEAD→heal→teal→tell→tall→TAIL.

다음은 캐럴 연구자 마틴 가드너가 내는 문제다. 원숭이(ape)를 한번 인간(man)으로 바꿔보라.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APE→apt→opt→oat→mat→MAN!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모험의 끝에 마침내 여왕 자리에 오른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이 변신의 비밀은 체스의 규칙에 있다. 장기의 졸(卒)에 해당하는 폰(pawn)은 앞으로 나아가 맨 마지막 칸에 이르면, 막강한 힘을 가진 퀸(queen)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거울 뒤의 세계는 거대한 체스 판이다. 여기서 하얀 색 폰이 된 앨리스는 열한 번 움직인 끝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예 체스의 기보(棋譜)를 작품의 줄거리로 삼은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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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피네건의 경야(經夜)’(1939)에 도입한 무의식의 흐름 기법은 캐럴의 서술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한다. “누가 파이를 훔쳐갔을까?”라는 이상한 나라의 재판이 없었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1925)에 나오는 부조리한 상황이 나올 수 있었을까? 캐럴의 소녀애(少女愛)는 후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에서 좀더 노골적으로 발전한다. 다다이즘의 무의미 시와 캐럴의 말놀이, 초현실주의와 캐럴의 팬터지 사이의 관련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이상한 나라의 역설, 무의미, 부조리에 깔린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 바 있다. ‘의미와 논리’라는 책에서 그는 앨리스를 소재로 삼아 스토아 학파의 존재론을 논한다. 스토아 학파에는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플라톤주의와는 다른 존재론이 들어 있다. 플라톤이 ‘존재’를 중시한다면, 스토아 학파는 ‘사건’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앨리스의 모험은 이 새로운 존재론을 문학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캐럴 연구자 마틴 가드너는 앨리스 2부작이 “10대가 되기 전에 읽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외려 10대야말로 캐럴의 동화를 읽기에 가장 부적합하지 않을까? 반쯤 어른이 된 청소년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고 깔깔거리기에는 너무 늙었고, 그 역설, 무의미, 부조리의 바탕에 깔린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리다. 캐럴은 가장 비논리적인 어린이와 가장 논리적인 어른만이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인생은 꿈이런가?

토끼를 따라 구멍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의 첫 번째 모험은 카드들이 덤벼드는 것으로 끝난다. 비명을 지르며 놀라서 몸을 뒤척이다가 언니 무릎 위에서 잠이 깬다. 꿈속의 카드는 자고 있던 얼굴에 떨어진 낙엽이었다. 거울 뒤로 들어간 두 번째 모험은 체스의 붉은 여왕을 붙잡고 흔드는 장면으로 끝난다. 붉은 여왕은 얼굴이 작아지고 눈동자가 커지더니 고양이가 된다. 꿈속의 붉은 여왕은 집에서 기르던 새끼 고양이였던 것이다. 꿈에서 돌아온 세계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앨리스의 이름으로 된 아크로스틱 시는 이런 구절로 끝난다.

“꿈이 아니라면 인생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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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시냇가에 앉아 있는 것이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슬쩍 들여다보았지만, 그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었다.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을 뭐가 좋아서 읽는담?”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래서 앨리스는 데이지꽃 화환을 만드는 일이 과연 데이지 꽃을 따고 모으는 수고를 할 만큼 재미있을까 생각했지만(무더운 날씨 때문에 너무나 졸리고 멍한 상태였기에 애를 써야 했다) 그것도 귀찮았다. 그때 갑자기 분홍색 눈을 가진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앨리스 옆을 뛰어서 지나갔다.

어린 시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한번쯤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작은 그림책, TV 만화영화로라도 말이죠. 저 역시 어렸을 때 앨리스를 그림책이든 이야기로든 자주 접했던 듯싶습니다(사실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앨리스가 따라간 늘 바쁜 토끼와 “저놈의 목을 베어라!”라고 소리치며 화만 내는 하트의 여왕이 생각나니까요.

하지만 점차 사라지다가 형체는 없어지고 웃는 입만 남는 체셔 고양이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이용한 말장난,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만이 알 수 있는 패러디 시가 나온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만화영화의 곱고 예쁜 색깔의 앨리스와는 전혀 다른 존 테니얼의 삽화를 본다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기이한 동물과 귀엽고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삽화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열 살짜리 작은 여자아이를 사랑한 한 성직자가 그 아이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정말이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용한 강물 위를 함께 노 저어 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수많은 동화들을 즉석에서 지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한 편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없었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여름날의 하루살이처럼 저마다 황금빛 오후 한나절을 잠깐 살았다가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우연처럼 내 어린 청중 중 한 명이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써달라고 간청했다.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도지슨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 교수였습니다. 그가 어느 화창한 오후에 자신의 꼬마 친구들인 리델 학장의 어린 딸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그중 둘째인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즉흥적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이 동화의 시초입니다.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캐럴은 독특한 종이접기나 퍼즐, 게임 같은 것을 고안해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여자아이들과 친했고,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이는 바로 앨리스 리델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기 때문에 캐럴이 일종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답니다.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입니다. 수학은 상상의 학문이죠. 상상을 벗어나기 위해 수학을 한다면, 루이스 캐럴의 환상은 어쩌면 고도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흔히 판타지 문학의 제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반지의 제왕>처럼 <앨리스>에는 과거의 신화가 있지 않죠. 다만 현재의, 혹은 미래의 상상이 있을 뿐입니다.

<앨리스>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이제는 멀티가 된 문화의 한 장르에 너무도 절묘하게 흡수되어 있지요. 그만큼 앨리스가 디지털적 사고를 자극하는 텍스트라는 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앨리스를 생각해보세요. 거기에는 서구 문화의 무수한 메타포가 나옵니다.

“흰 토끼를 쫓아라.” 네오는 어떤 여인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몸에는 토끼가 그려져 있지요. 앨리스를 안내하던 그 바쁜 토끼 말입니다. 또 메시아임을 확인시켜주는 예언자가 네오에게 준 것은 ‘과자’입니다. 앨리스의 몸을 조절해주던 과자! 아무튼 우리의 해리포터나, 더 거슬러 가서는 구니스들 그리고 하야오의 많은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앨리스의 가족이라는 겁니다. 때문에 앨리스는 우리 시대를 선취한 유쾌한 예언서인 것이구요.


그러나 <앨리스>를 읽는 데 있어서 지나친 분석은 경계하라는 수학자 마틴 가드너의 견해처럼 골치 아픈 상징적,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동화 속의 기가 막힌 상상과 유쾌한 말장난, 그리고 앨리스에 대한 깊은 애정만 있다면 말입니다.

아마도 전 오래전 '매트릭스'와 '이웃집 토토로'와 그 외에 많은 장면들에서 늘 앨리스를 만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처 블로그 > 자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원본 http://blog.naver.com/new_man/140034405557
Tag : 부조리, 빅토리아 시대, 앨리스, 어른의 동화, 이상한 나라, 진중권, 팬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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