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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에 해당하는 글(1)
2007.05.01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과 상대주의(Relativism)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과 상대주의(Relativism)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과 상대주의(Relativism)

출처: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8&docid=318146
작가:

1. 상대주의와 삶의 형식


비트겐슈타인과 상대주의의 관계는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쟁점이 되는 개념이 바로 '삶의 형식'(form of life)이다.


특히 인류학적, 문화적 접근에서 비트겐슈타인을 읽는 사람에게서 상대주의적 해석이 강하게 나타난다.


"언어에서 사람들은 일치한다. 이것은 의견들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의 일치이다."

"어떤 하나의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식의 일부"


위 인용문들은 후기의 대표적인 저작인 '철학적 탐구'의 일부이다. 삶의 형식 개념이 나타나고 있는 곳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개념은 공동체적 언어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일단의 집단을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 삶의 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따라서 다른 언어(독일어와 프랑스어의 다름과는 다른 차원의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는 삶의 형식의 차이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고, 혹은 다른 삶의 형식이 언어의 차이를 발생시킨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피터 윈치


피터 윈치(Peter Winch) 같은 사람을 이런 추론을 펴는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다.그는 논란을 일으켰던 '사회과학의 이념'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실재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접근만을 펴는 것은 '실재'라는 말이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과학적 의미일 수도 있고, 종교적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재라는 말을 종교적으로 쓴 사람에 대해서 과학적인 측면에서 비난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실재'라는 말의 뜻, 나아가 종교적인 삶의 형태를 오해한 셈이다.


인류학적으로 본다면, 마술이나 주술을 믿는 집단에 대해 '과학적 오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들의 삶의 형식 속에서 마술이나 주술이 갖는 의미를 전적으로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 오류라고 보지만,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서 마술과 주술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그것을 과학으로 의도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주술이 과학보다 '더 옳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틀린'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삶의 형태와 우리들의 삶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윈치는 아잔데 부족에 대한 글을 통해서 이를 논증한다)


3. 상대주의


확실히 이런 주장은 너(너네 집단) 나 나(우리 집단)나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뿐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옳고 그름 같은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리고 이 점이 상대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이기도 하다.(예컨대, Robert Trigg는 'Wittgenstein and Social Science'라는 논문에서 그러한 관점에서 윈치와 비트겐슈타인적인 삶의 형식 개념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이념'에서의 윈치의 주장이 이렇게 해석될 여지는 다분하다. 윈치 또한 90년 '사회과학의 이념' 2판의 서문에서 그러한 여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식의 상대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은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이다. 확실히 상대주의가 갖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그 스스로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자민족 중심주의를 주장하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는 그의 입장을 상대주의라고 한다고 해서 별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Hilrary Putnam은 이에 대해 로티와 논쟁을 벌였다)


비트겐슈타인과 상대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의 의견이 가능하다.(순전히 논리적으로)

1. 비트겐슈타인을 상대주의로 보고 옹호하는 입장

2. 비트겐슈타인을 상대주의로 보고 비판하는 입장

3. 비트겐슈타인을 상대주의로 보지 않고 옹호하는 입장

4. 비트겐슈타인을 상대주의로 보지 않고 비판하는 입장


위에서 예를 든 윈치나 로티 같은 경우가 1에 해당할 것이고, 상당수의 연구자들이 2에 해당한다. 4번은 상대주의와는 좀 다른 차원에 있을 것이고, 필자의 경우는 3번..


어떤 하나의 입장을 택하기 이전에 대체 '상대주의'가 무엇이냐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에 조심스럽지만, '평가의 잣대가 없거나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다. 그런 상대주의에 대해 비난이 퍼부어지는 것은 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리라. 도둑질이 나쁘다고 해 봐야 '그건 네 입장일 뿐이다'라고 말해버리는 그만이니까.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확실히 위에 언급한 상대주의가 취하는 것이 있다면 수많은 주관들이 갖는 관점들의 (필연적인) 차이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강하게 부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식의 주관주의이다. 그런 입장이 사적 언어 논증에 드러나 있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이 옳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 근거를 개인의 정신에서 찾는 것은 주관주의일 것이고, 개인의 선택에서 찾는 것은 결단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서 찾는 입장을 본질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특히 로티가 이 점을 강조하는데)은 그 근거를 사회, 언어 공동체 속에서 찾는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식의 논의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왜냐하면 '옳음'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 속에서 올바로 쓰이고 있고, 그것이 적절히 적용될 수 있는 예들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옳다'는 것을 언어적 현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그런 식의 '본질적인 옳음'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옳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의 옳음 개념은 일상적인 옳음 개념을 오해하고 있거나 전혀 엉뚱한 맥락에 적용시키는 것일 뿐이다.(주로 철학적인 언어 놀이를 할 때 발생하는) 예컨대,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를 사로잡는 혼란들은 말하자면 언어가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헛돌고 있을 때 일어난다."


4. 상대주의적 위험


차라리 상대주의적인 문제는 전혀 다른 집단들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두 집단 사이에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해서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앞서 인용했듯이) 언어에서 사람들이 일치하며, 이것이 삶의 형식의 일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일치는 소통의 전제가 된다. 만약에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상대주의가 갖는 위험이란 우리와 호랑이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위험 그 이상이 아니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회나 집단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면서 '상대주의적 현상'의 발생을 걱정할 때 잊고 있는 것은, 그들과 우리가 이미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안고, 일정한 소통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을 뿐, 삶의 형식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가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 합의하고, 일치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각자의 차이가 어떻게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비트겐슈타인을 단순한 상대주의자로 몰아붙이거나 상대주의라고 보고 찬양하는 식의 입장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상대주의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는 여러 모로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오히려 그의 입장은 상대주의냐, 상대주의가 아니냐라는 식의 구도를 넘어서서, 상대주의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을 취한다는 것,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대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와 같은 문제 제기를 가능하게 하는 발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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