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nslation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2007/12'에 해당하는 글(6)
2007.12.30   lost in translation
2007.12.28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에 대하여 (펌글:미술관련 책소개)
2007.12.27   포일_이안이 대형/인터넷 서점에 출시!
2007.12.26   이명박대통령이 가꾸어 갈 문화환경에 대해 생각하며..
2007.12.26   한정식 /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미사진전,2006) (펌글)
2007.12.18   김윤호 '다섯번째 여행'전 서문 (아르코 미술관) 펌글입니다.!


lost in translation
You are in me but not in my words.
I can not translate who you are.

I'm in your words. So you tell me who  I am.

I can't stay any longer without your translation.

But can I stay there with your translation?

Can I speak to you?
Please tell us we are here for ourselves.

as always


words from mojikim

revised!
Tag : Lost in Translation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에 대하여 (펌글:미술관련 책소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blog.empas.com/desumi/24329403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에 대하여


동시대적 문화 감수성, 젊은 세대의 감수성, 젊은 작가들의 고통과 행복 * 한계와 경쟁력, 비주류 또는 젊은 피, 예술 세계에서 ‘경쟁’의 의미, 예술의 유효성.


우리는 왜 이 전시를 기획하고, 왜 이 책을 쓰는가?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Blue Ocean * The Blossom of Youth.’ 이 제목의 기획이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은 ‘동시대의 젊음과 이제 막 개화하는 그들의 미적 감수성’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지금 우리시대의 젊은 감수성’이 어떻게 예술작품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서술하려 한다.
   흔히 ‘젊음’하면, 생물학적 연령이 20-30대인 사람들을 가리키게 되고, 그런 사람들의 육체적 * 정신적 상태가 건강하고 활기참을 떠올리게 된다. 단순히 ‘어림’과 ‘늙음’ 사이의 어중간한 상태, 모호하고 불안정한 위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젊음’은 가장 생기발랄하고 열정적인 존재의 상태, 가장 분명하고 강한 입장을 의미한다. 우리가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젊음’은 바로 이러한 존재 상태와 입장을 가진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의 젊은 작가들과 그들의 예술이다.   
   어느 시기, 어느 영역에서나 당대의 핵심적인 변화와 경향에 대해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지금 여기’가 변화하는 양상과 그 경향을 파악하고, 그 핵심을 감각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논리적 언어로 서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유는 말 그대로 ‘변화’와 ‘경향’은 가변적이며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문화의 속도는 과장하자면 음속과도 같아, 하나의 주제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항시적 ‘변화’ 속에 있지만 이 변화가 어떤 사고의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유행에 쓸려 가버리기 때문에 문화는 ‘언제나 동일한 것의 반복’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정 우리 자신의 내부, 우리 삶의 심층, 우리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가장 바깥에 드러난 양상에 이르기까지 움직임과 형성물들을 말할 수 있을까? 우선 필요한 것은 현상을 분명하게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의식적 거리’와 ‘그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찰과 인식의 결과, 성찰의 내용을 그에 합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통해 구체화하는 일이다.
   우리는 현재 한국사회의 ‘경제 만능 사고’에서 촉발된 미술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아트 마켓만을 비대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미술에 대한 관심(interest)은 정작 ‘미술’은 소외시킨, 이익(interest)에 대한 광적인 애정으로 보인다. 칸트가 정의하는 ‘무관심의 미’가 아니라 온통 ‘사적 관심에 얽매인 미’가 난무하는 곳에서, 상대적으로 비어가는 것은 작가와 감상자 모두의 ‘미술 실천’이다. 미술작품 상품 진열대 칸과 몇 몇 상업갤러리, 옥션, 미술품 거간꾼, 투기꾼의 은행계좌 칸이 꽉꽉 채워지는 가운데, 작가의 예술적 생산력, 감상자의 예술 이해와 문화적 향유, 미술비평 담론의 실천성이라는 칸은 ‘쓸데없는 것’ 정도로 격하되고 있다. 우리는 2007년 현재 한국 미술계 ‘속’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천민자본주의 상업적 경향에 맞서 ‘작품 * 향유 * 담론의 예술’이라는, 비어가고 있는 미술의 칸들에 생산적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기입하고 싶다. 이 공허하게 비어가는 칸들은 결코 시장이 검증한 유명 작가들, 한국현대미술사가 인정한 원로들의 예술을 중심으로 안전하게 기술될 수 없다. 오히려 변화의 과정 속에서 있는 젊은 감수성의 작가들, 누구로부터 인정받을 어떠한 기회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무명 미술가들의 빛을 보지 못한 예술을 중심에 두고 지적 모험과 비약을 펼치는 방식으로만 서술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시대 젊은 작가 23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들이 경험하는 것, 그들이 자신의 예술로 표현하는 것을 ‘지금 여기 문화’의 변화와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현상들’로 삼았다. 생물학적 연령으로 매우 젊거나, 작가 이력으로 거의 완벽하게 무명이며, 아주 사적인 작업 성향을 가진 이들 23명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의 참여 작가들은, 어떤 세대적 대표성이나 예술적 성취, 보편적 의미의 예술성을 갖고 있어서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이 작가들이 새파랗게 젊고, 무명이라는 점에 주목했으며, 그들의 경험과 사고, 예술에 대한 열망이 기성의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미완성이기 때문에 함께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23명 참여 작가들의 미술은 아직 상투적 해석과 이전투구의 경쟁에 물들지 않은 ‘블루 오션’이고, 이 작가들의 경험과 표현은 ‘가장 미약하고 파편적인 현상들’이다. 우리는 이 작가들 대부분을 미술대학 졸업학년이었을 때 만나, 이들의 작업을 쭉 지켜보았으며,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에 대한 ‘미결’ 상태의 생각을 공유했다. 이 이야기는 책에서 ‘23명 인터뷰’로 당신께 전해진다.
   아직 미술계에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만들지 못한 한 작가가 자기 ‘회심의 역작’이 유명 작가의 작업과 너무 비슷해, 스스로 그 작업을 접으면서 ‘갑갑해’ 하는 것을 보았다. ‘세간에는 영 아티스트 발굴 어쩌고 떠드는데 왜 내 작품 보러 오는 사람 한 명 없느냐’, ‘도대체 젊은 작가 발굴한다는 큐레이터들이 돌아다니는 발굴처가 어디냐, 그런 일을 하기는 하느냐’는 항의성 질문도 받았다. 그리고 ‘당신이 비평가이고 큐레이터라면’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충동과 의지를, 그 한시적으로만 빛나는 것들을, 글을 통해서든 전시를 통해서든 구체화해야 마땅하다는 요구를 들었다. 우리가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라는 주제전시를 통해 이 23명 젊고, 경력이 일천한, 개별적인 예술 성향을 가진 작가들의 미술을 드러내고, 동명의 책을 통해 동시대 젊은 감수성과 의식을 언어화하는 기획에 착수한 데는 작가들의 이러한 ‘모종의 압력(?)’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우리는 지금이 ‘우리시대의 젊은 감수성’에 대해 보여주고, 말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사회 여러 영역의 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어떤 변화’는 이제 무르익었고, 아직 ‘다른 변화’로의 도약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변화’는 긍정적인 의미와 그 반면교사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다른 변화’는 물론 그간의 부정적인 변화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긍정적 변화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이라고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표현한 ‘지금 여기의 경험 * 문화 * 예술적 변화’에 대해서, 여러분이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전시를 보면서 감지하고, 책의 본문을 읽으면서 파악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와 책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구조 속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가 처음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를 구상한 것은 2006년 9월이다. 그때 이 기획은 참여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크게 세 과정으로 나누고, 작업 성향에 따라 하나의 전시 속에 세 개의 소전시로 구성하며, 작가들의 인터뷰와 작품 비평을 통해 동시대 젊은 감수성에서 세 가지 미학적 요소를 추출한다는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이 기획을 1년여 동안 진척시켜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라는 제목을 가진 하나의 전시와 한 권의 책으로 구체화하게 되었다. 전시가 세 개의 소주제(+포트폴리오 전시)로 구성되고, 책 속에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읽은 동시대 젊은 감수성이 세 가지 미학적 요소로 정의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3 Process - 3+1 Exhibition - 3 Aesthetic Elements 
3 Process
전시장소
 3+1 Exhibition
3 Aesthetic Elements
 푸른 대양으로
갤러리 벨벳 1층
푸른 대양
 미결정성
전성기 예견
갤러리 벨벳 지하
청춘의 개화
감촉성
불시착
심여 화랑
  불시착
응결된 불안
 
갤러리 175
 포트폴리오
 
 
   요컨대 우리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창작 과정을 ① 새로운 미술을 향한 충동(‘푸른 대양으로’) ② 암중모색(‘불시착’) ③ 자기 예술에 대한 긍정과 정립 시도(‘전성기 예견’)로 나눠 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번호 순으로 표기했지만, 전혀 발전단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또 해당 주제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그런 단계에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기성의 성공한 작가이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이든 작가들에게는 누구도 하지 않은 자기만의 작업을 하고자 하는 충동이 언제나 있다. 동시에 작가들은 작업이 어떤 이상한 방향이나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 봉착하는 창작의 매순간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긍정과 확신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정한 창작의 세 과정은 발전단계가 아니라 일종의 나선형처럼 돌고 도는 창작의 긴장된 순간들을 은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는 창작의 세 과정과 세 미학적 요소들을 결합해 세 개의 소주제 전시로 형상화하고, 책 속에서는 기획자의 비평과 작가 인터뷰로 제시한다.  

   ① <푸른 대양 - 미결정성>에서는 기존 미술의 형식과 내용, 양식, 비평 담론을 참조하면서도 독자적인 미술 언어를 발명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한다. 최수연, 김선미, 김민경, 백정기, 선 무, 이승민, 이주호, 윤경철 이상 8명 신진 작가들의 회화, 반(半)입체, 기계작품이 이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주제 제목에서 표현됐듯이, 이들은 미술의 미개척지를 찾지만, 이들의 작업은 아직 자신 스스로에게도 외부의 평가에서도 ‘미결정적 상태’에 있다. 그래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미적 요소란 크게 범주화하면, ‘미결정성’이다. 요컨대 전적으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제안하는 것과 외관상 기존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미술 규범을 일정 정도 고수하는 양상 사이에 걸쳐 있어 정확하게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작업 성향을 이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② <불시착 - 응결된 불안>은 현재 젊은 작가들의 평면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심리적 상태를 작품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장이다. 이 소주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다루는 모티브는 아이들, 대중스타, 인테리어 소품, 케이크, 만화캐릭터, 낙서 등 주변부적인 것 * 일상적인 것 * 대중문화적인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김영주, 최지영, 김지혜, 박종필, 박금화, 홍주연, 안준홍, 홍세정 이상 8명 작가들을 통해 이 모티브들은 매우 낯설고 기묘하며, 비판적인 의미를 담은 사물들로 변환된다. 한편으로 이들의 평면 작품은 작가 내면의 소박한 일상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들 작품에서 표출된 감수성은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문화적 삶에 대한 구체적 지표라 할 수 있다. 문화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신호는 끊임없이 불안하게 울리는데, 우리에게 이러한 비상 신호와 불안한 심리는 일상화되어 있다. 이 8명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응결된 불안’이 어떤 표현 언어를 얻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청춘의 개화 - 감촉성>에서는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성향 중 하나를 짚어보려 한다. ‘감촉성’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 여기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점점 강화되고 있는 이미지의 촉각성이다. 이때의 ‘촉각성’은 단순히 직접적인 접촉의 감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습관’과도 같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지각을 의미하며, 시각예술이 더 이상 ‘시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연동시킬 정도로 감각에 직접 어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촉각성’이라는 말보다는 ‘감촉성’이라는 단어가 이 소주제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소주제에서 우리는 문미영, 이경민, 차영석, 양화선, 김청진, 김윤정, 조종성 이상 7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더듬으면서 이 작품들의 ‘감촉성’을 전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섹션에서 ‘청춘의 개화’는 현재 만개해 있는 ‘아트마켓형 미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음을, 그러나 지금 현재 어디선가 작업하고 있을 이름 없는 작가들의 예술세계가 개화하기를 고대하는 마음 또한 함축하고 있음을 말해두어야겠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밝힌 내용으로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를 기획했고, 이제 이 기획물을 세상 속으로 열어 놓으려 한다. 작가들과의 첫 미팅에서 기획자는 작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 전시와 책의 주인공입니다. 나는 여기 있는 무명의 젊은 작가들이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라는 전시와 책을 통해 ‘대박’이 나고,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신나게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덕분에 저도 좀 유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하하)”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이 기획을 통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예술이 예술답게 사람들로부터 지지받는 것’이다.

2007. 10. 4.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기획자 강 수 미

Tag :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강수미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포일_이안이 대형/인터넷 서점에 출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foil_Iann released to books shops (Dec, 2007)

Tag : foil_iann, 포일이안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이명박대통령이 가꾸어 갈 문화환경에 대해 생각하며..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시마다 아쓰시 편저

마음의 꽃  미야자키 기요시

일찌기 유카와 히데키 박사는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두 빌딩 사이에 잡풀이 무성한 공터가 있다고 합시다. 디자이너들은 그 곳에 신나는 놀이기구와 예쁜 베치를 설치해 공원으로 만들고 싶어하겠지요. 건축가들은 그 곳에 재미있는 모양의 건물을 짓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재주도 없는 저는, 전문가인 여러분과 달리 잡풀 무성한 공터 그대로 놔두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카와 박사의 이 문제 제기는 잡풀이 무성한 공터를 둘러싸고 다양한 구사을 짜낼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인간적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구상할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유카와 박사는 잡풀이 무성한 공터를 그냥 놔둠으로써 놀이를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고자 호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손질을 전혀 하지 않는 손질 방법도 있다'거나, '만들지 않는 것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철학을 호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만들지 않는 것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지평까지 사고를 확대하여 디자인의 방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왜' 와 '무엇 때문에'를 더욱 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경제는 더욱 내 맘을 어지럽게 만든다. 생각을 안하고 지내자니 어른스럽지 못한, 책임감 없는 행동같고 막상 그것들을 이해하려니 가슴이 답답해져 눈을 돌리게 된다. 대통령선거로 떠들석했던 2007년 연말이다. 다행인건지 무책임한건지 이번 선거에도 나는 저 멀리 런던에 있는 관계로 그 번잡함을 피해갈 수 있었다. 관심 반, 무관심 반, 그렇게 선거는 끝났고 벌써 크리스마스였다. 무슨 특별한 날이다 싶으면 왠일인지 모든 일들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집중하려고 노력해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때우다가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게 싫어져 읽기 편한 책 한권을 들었다.

일본디자이너들의 에세이나 인터뷰를 묶어 만든 책인데, 꽤 유익한 정보가 많다. 아니 정보라고 말하기보다는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의 근본적인 질문에는 '생산'의 개념이 아닌 '의식'의 개념이 한층 짙게 깔려있어 머리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자연친화주의나 낭만주의가 묻어 현실적이지 못한 글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인간주의에 매료되고 만다.  여러 글 등 중에서, 미야자키 기요시가 제기하는   '만들지 않는 것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지평까지의 사고는 내 가슴을 동요시킨다. 현대 자본주의시대에 '창작'과 '생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창작'이란 이름아래, 디자인과 예술이 그 뒤로 이름을 잇고 문화는 고귀해진다 . '생산'이란 어디까지난 변별력 없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생산'에는 아름답고 추한 것, 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생산'이란 개념 뒤에는 미야자키 기요시의 말처럼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만든다는 것'의 본질 안에는 적절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물건을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고, 생산품으로서가 아니라 (좀 유치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담은 그릇'처럼 느긋이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할 때다. 이른바 '물질현상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이다. 참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상징이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보거나, 추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은 여기에 적절한 표현인 듯 싶다. 물질의 외형을 다듬어 가는데는 그것을 사유할 만한 마음이 자리잡혔을 때에 진정한 문화 속에 예술이 싹트고, 우리가 수백만번 되새기는 한국적인 '미'가 발현한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2008년 새대통령이 당선됐다. 앞에서 말했듯이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인 내가 그를 비평할 만한 재주는 없다. 다만 개발이란 이름아래, 여전히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급급한 모습이 아니기를 바란다.  '만들지 않는 것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을 단순히 개발하지 말아야 할 특수지역을 끝까지 사수하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보존'한다는 의미보다는 '새것'을 만들면서 지닐 자세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같은 마음의 자세는 5년을 이끌어갈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인기도 하고 말이다.

글.mojikim

 

Tag : 디자인, 미야자키 기요시, 이명박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한정식 /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미사진전,2006) (펌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정식 /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미사진전,2006 펌글)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내가 절을 찾는 것은 절이 좋아서이다.
절이 좋은 것은 그 고요로 해서이다. 요즈음 절은 철도 없는 관광객으로 시끄럽기는 해도 그것은 잠시, 그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나면 다시 이명이 째앵 하는 고요로 깊이 잠긴다. 산 속에 자리 한 그 마음이 우선 고요하다. 산에서는 물도, 풀도, 돌도, 모두 고요하다. 사람조차도 산에 들고 절에 안기면 고요해진다.

고요는 요즈음 내가 사진으로 이루고자 하는 나의 세계이다.
고요를 찾아 그 고요 속에 내 사진을 담그고자 해서가 아니다. 고요, 곧 적정 적멸의 경지가 내가 이르고자 하는 내 사진의 궁극이어서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진으로 이룰 수 있는 선(禪)의 경지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사진 적 추상의 한 완성형이다. 이러한 선의 세계는 추상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를 수 없다.

그 길은 사진이 지향해야 할 또 하나의 지평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추상을 이루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허무한 짓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진의 추상화가 사진이 이루어야 할 이상 역시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피해야 할 금기는 더더욱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영역의 확장은 늘 있어왔는데, 그만한 필연성이 거기 있어서였다. 그 길의 하나를 확실히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길이 이 길이다. 내가 그를 이루겠다는 장담은 하지 못하지만, 내가 택한 나의길, 가는 데까지 가고자 한다.

사진의 추상화는 사물 벗어나기를 통해 이룰 수 있다.
구체적 사물 없이는 찍히지 않는 사진이 어떻게 사물을 벗어날 수 있을까. 사물을 찍되, 사물이 느껴지지 않고, 작가가 먼저 보이는 사진,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느낌이 먼저 다가오는 사진이 이루어질 때 사진은 사물을 벗어난 것이 된다. 사물이 제1의적 의미에서 벗어나 제2, 제3의 의미를 창출할 때, 의미도 형상도 벗어난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 때 사진적 추상은 이루어진다.

금강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그 형상이 허상임을 깨닫는 순간 너는 곧 부처님을 뵌 것이 되느리라.”
깨달음 자체가 곧 부처임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사진이 그렇다. 눈앞의 사물이 사물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사진은 찍힌다. 형상을 가진 모든 사물이 허상임을 깨닫는 자리가 사진이 출발하는 자리이다. 사물은 생각과 느낌의 출발점이다.
사물을 벗어남으로써 사진의 추상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금강경에서 이미 가르쳐 주신 바를 따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 말씀 속에는 사진의 길도 이미 들어 있었다.

내가 절을 찾는 것은 절이 좋아서이다.
절이 좋은 것은 일상이 증발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이다. 일상이 증발한 곳에서는 모든 사물이 추상화된다. 절에서는 우리의 삶도 말갛게 바랜다. 내 발이 디디고 선 땅조차도 백지장처럼 무게를 잃는다. 무중력의 우주적 공간이 거기 펼쳐진다.

글 / 한정식 (사진가)

------------------------------------
한정식 (韓靜湜 Han, Chung-Shik)

1937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 연구소 수료(사진전공)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졸업

경력
서울 시내 보성, 휘문고 교사 역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 대구예술대학교 석좌 교수 역임
현 중앙대학교 및 백제 예술대 명예 교수

개인전
1977 <나무>, 니콘 살롱, 일본 동경
1988 <나무>, 공간 화랑, 서울
1988 <거울>, 스즈키야 화랑. 일본 동경
1986 <한 정식 사진전>, 서울 갤러리, 서울
1992 <발>, 한가람 미술관, 예술의 전당, 서울
1997 <풍경론>, 한가람 미술관, 예술의 전당, 서울
1999 <한정식 사진전>, Camera Obscura 갤러리, 프랑스 파리
2002 <고요>, 금호 미술관, 서울

사진집
「나무」, 열화당, 1990
「발」, 사진예술사, 1992
「풍경론」, 눈빛, 1997
「고요」, 열화당, 2002
「흔적」, 눈빛 2006

저서
「사진예술개론」, 열화당, 1986. 제 4 개정판, 눈빛, 2004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열화당, 1999
「사진의 변모」, 1996. 개정판「현대 사진을 보는 눈」발간, 눈빛, 2004
「사진과 현실」, 눈빛, 2003
「사진, 예술로 가는 길」, 눈빛, 2006

Tag :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정식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김윤호 '다섯번째 여행'전 서문 (아르코 미술관) 펌글입니다.!

출처: 반이정씨 블로그 http://blog.naver.com/dogstylist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스튜디오 프로그램 참가 후 귀국보고전'이란 긴 이름을 달고, 사진가 김윤호의 개인전 '다섯번째 여행'이 내일 오픈한다. 전시 서문을 쓴 인연으로 글과 전시 소개를 함께 올린다. 참고로 금번에 출품되는 신작은 '미디어 작업'이 많다. 때문에 아래 참고 사진으로는 이번 귀국보고전의 전망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전시 기간과 장소는 11월28일(수)~12월4일(화) 아르코미술관 제1전시실

 

전시: http://neolook.net/mm07/071129c.htm

 

 

로드 무비 처럼 성찰 하는 김윤호의 로-테크 기행기

 

 

 

반이정 미술평론가 dogstylist.com

 

뮌헨 ‘렌바흐 시립미술관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에 내걸린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dreas Gursky의 2007년 신작 <James Bond Island> 연작 세 점은 팡아만(灣)Phang Nga Bay 위로 비현실적으로 부유하는 바위섬의 비경을 종심 깊게 초대형 포맷으로 옮겨왔다. 과연 그다운 상상력이었다. 나는 그 작업을 지켜보며, 소위 작품의 문맥을 따질 것조차 없이 잡티 하나 없는 압도적인 인화물의 위력을 새삼 체험했다. 또 수년 째 국내 사진계를 뒤흔든 뒤셀도르프산(産) 유형학적 사진의 광풍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 이름깨나 올리는 국내 사진가치고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이가 적진 않으리라. 그러나 이중 대다수는 대한민국 고유의 유형성을 탐사하고 성찰하기보다, 초대형 포맷 속에 피사체의 중성적인 인상을 옮겨오는데 더 충실한 것 같다. 2002년 박건희 문화재단이 개설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 ‘다음 작가상’의 1회 수상자 2인 가운데에 겨우 대학원을 막 졸업한 30대 초반의 김윤호가 포함되었다. 수상금으로 이듬해 발표한 <지루한 풍경 The Tedious Landscape>는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사이트에만 관찰되는 유형들이 기록되었다. 지자체들이 유치하는 명칭 조차 민망한 갖가지 미인대회를 추적한 <지루한 풍경 2>는 사이즈에서는 못 미쳤지만, 그 안에 담긴 콘텐츠만은 지방 소도시들에서 발견되는 판에 박힌 지역주의의 유형성이 잘 열거되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57-960, 2002

 

 <지루한 풍경 1>은 수도권을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 때 시야로 펼쳐지는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인 간판 문화의 일단을 6*17 배율 파노라마로 담아, 그 기나긴 행렬을 고의적으로 지루하게 극대화시키고 유형화 시켰다. 한국적 유형주의였다. 그렇지만 유행과도 일치한 작가의 시도와 수상 경력이 국내 무대에서 등판할 기회가 되어주진 못했다. 가장 큰 요인은 2003년 ‘다음작가상’ 전시 직후, 외유(영국 골드 스미스 유학)을 떠나 공백을 만들어서다. 2006년 귀국 직후에는 다시 1년간 베를린 레지던시 참가 차 출국해 또 다른 공백이 생겼다. 이런 공백기와 더불어 등판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또 다른 까닭은 그가 2002년 무렵 고국에서 단서를 찾은 비정상적 유형성에 대한 탐사가 이내 국제적인 보편성과 연결되었고, 그것이 다시 작가의 자신의 자의식에 질문을 던지면서, 고유한 스타일 개발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성찰에 전력을 다한 탓이 크다고 나는 본다. 김윤호가 국내에서 출품자로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전시 중 ‘청년미술제’(서울시립미술관 2005)를 통해 2002년 수상 작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유형성을 채집 중이라는 연결 고리가 그나마 단서라면 단서랄까. 2004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3분여의 영상물을 보면 초기작과의 격차가 훨씬 크다.

 

지난 8월 김학량이 기획한 <이상한 나침반>이 열린 창덕궁 앞 ‘갤러리 눈’의 벽면에 붙어 있던 초소형 모니터를 떠올려본다. 저해상도의 영상물 옆에 붙어있는 명표로 김윤호가 적혀있었지만, 나는 그만 동명이인이려니 하고 넘겨짚고 말았다. ‘귀국 보고전’ 성격을 지닌 이번 개인전의 출품 목록을 살피면 <엽서 시리즈>부터 모니터 작업 3편과 프로젝션 1편까지 그간의 고민과 변화를 포괄적으로 모아 놨다. 디스플레이 완결 이전에 집필된 글이니만큼, 나는 그저 예측만 할 뿐이지만, 아마도 시선을 사로잡을 작품은 <죽기 전에before you die>(2006-7)와 더불어, 긴 벽면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1,000대의 관광버스들A thousand different buses which I met in Berlin>(2006-7)이 아닐까. 디아섹으로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제목이 말해주듯 무려 1천대의 버스를 파노라마 격자위에 조합했다. 때문에 <1천대의 관광버스들>은 2002년 무렵 작가의 초심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대오를 정확히 정렬(整列)한 백색 ‘현대 관광’ 버스 19대의 각 잡힌 주차장면<357-960>(2002)의 모자이크 버전이며, 공사 현장 양철 가벽 위로 주저 없이 부착된 ‘제우스 관광 룸크럽’ 포스터의 기다란 시각 폭력<420-030>(2003) 혹은 ‘안전제일’을 소리 없이 외쳐대는 노란색 가드 <425-324>(2003)의 연장된 고민이다. 1천대의 버스 좌측면들의 집합은 전 세계에서 군집한 관광버스의 디자인을 수집하는 괴상한 취미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그저 길게 늘어진 색 점들의 장관으로 ‘감상’해도 무방하다(어쩌면 다수의 관객은 이 같은 관람 태도에 친숙해있다).

 

2002년 작가가 천착했던 문맥을 숙지한 관객이라면 좀 더 작품에 근접해서 관찰해보자. 대상과 배경이 대개는 상이한 1천개의 버스의 면면을 확인하고, 패키지 된 추억의 동형성이 버스들의 열거를 통해 반복된다는 인상에 다다를 것이다. 1천개의 직사각형 블록 안에 갇힌 1천대의 개별 버스들은 사이즈와 지면과의 높낮이를 포토샵 편집처리로 통일감을 높였고 덕분에 모자이크 스펙터클을 형상화한 반들반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록 외형은 상이하지만, 각 1천대의 버스가 실어온 탑승자들은 동형적인 추억꺼리를 필름과 메모리 카드에 담아갖고 귀국할 것이다. <엽서 시리즈>는 현지에서 관광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명승지 장면이 담긴 엽서와, 엽서 안의 장면을 최대한 동일한 각도와 위치에서 재촬영한 작가의 인화물 동일한 사이즈로 병렬시키는 구성이다.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다. 비록 다른 시간대에 촬영되었다지만, 동일한 장소의 모습 치고는 상호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블루 스카이 안료같은 선명도를 유감없이 증폭시킨 엽서 속의 모든 창공과 또렷한 색감은 최적의 기상조건 선정, 기대치의 필름 카메라로 촬영되었기에 얻어진 결과다. 어쩌면 인쇄과정에서 인위적 색보정까지 가세했을 수도 있다. 반면 소위 작가의 채집 결과는 실망스럽다. 03년식 5백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 Canon G5가 담아낸 명승지의 모습은 엽서가 재현하는 명승지의 기념비성을 훼손하고 정전화(canonization)된 가치마저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임시주차 중인 노변의 차들은 노트르담 성당의 입구를 막아섰다, 철근과 가림막으로 스페인 광장의 명물은 위용이 반감되었다. 비수기에 촬영된 탓인지 그저 한산할 뿐인 광장의 잿빛 전경은 이곳이 과연 <로마의 휴일>의 낭만을 보조해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다. 작가가 촬영한 가우디의 ‘성 가족 성당Sagrada Família’은 보수 공사 때문에 첨탑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크레인이 성당의 위용을 제어한다. 엽서 속에서 일몰이 만들어낸 아스라한 역광을 뒤집어 쓴 동상과 희뿌연 에펠탑의 판타지도, 작가에 의해 심도 깊은 피사계로 을씨년스런 잿빛 배경에 던져진 동상과 에펠탑의 차가운 장면으로 제시된다. 마치 하나는 실험군 다른 하나는 대조군같다. 현지 조달된 관광 엽서는 모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이국에서의 추억을 윤색하고 다듬어 놓은 환상적 실험군이라면, 현지에서 실상을 작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온 것은 실험군의 허구를 폭로하는 대조군으로 기능한다. 대조군의 견제 속에 여지없이 환상이 산산조각 난다. 보편적 관람객의 두 손에는 이런 똑딱이 디카가 쥐어져 있을 터다. 전시 될 영상물의 공통점은, 영화에 방불케 하는 소요시간과 화질을 담보하는 동시대 미디어 작업들의 일반적 요건을 전부 포기했다는 점이다. 로-테크로 깎아내려도 할 말 없게 생겼다. 소요시간은 3분 내외로 엄격히 통제되었다. 입자는 산산이 부서져 때론 식별조차 곤란할 만큼 저화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 가족 성당Sagrada Família’(<엽서 시리즈>중), 2006

 

잘 나가던 시절 미술을 때려친다고 선언한 직후 앤디 워홀이 메가폰을 잡고 쏟아낸 문제적 실험 영화 가운데, <Empire>(1964)의 상영시간은 무려 8시간 5분이었다. 그것은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저녁 8:06부터 새벽 2:42까지 8시간여 촬영한 것이었다. 이걸 누가 볼까? 워홀의 제작 목적은 영화 제작의 고유성인 관람을 관객 스스로 자진 포기하게 만든 것이었을 게다. 소요시간은 비할 바 못되지만, 3분여로 제한된 김윤호의 영상물들의 지루함도 만만치 않다. 2002년 <지루한 풍경>의 파노라마를 모니터로 옮겨온 것 같다. 고정된 프레임 위로 변화래 봐야 보행자들의 이동과 플래시의 점멸이 전부이니, 이 역시 20초만 관람하면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Empire>와 원리가 흡사하다. 생태적 복원보다는 관광단지 조성과 정치적 홍보를 목적으로 복개된 청계천 변을 거니는 시민들의 방문(<Pilgrims>(2005), <A moolit night>(2005))이나, 지역 랜드 마크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려고 무차별적으로 플래시를 눌러대는 템즈 강 건너의 비가시적인 인파 <20times small & 6times big flashes>(2004), 코펜하겐의 인어동상 앞에서 약 5초 내외로 포즈를 취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국 관광객의 판에 박은 모습<A spot>(2006)등이 이와 비슷한 원리를 답습한다. 이 모두의 소요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으며, Canon G5에 내장된 동영상 저장기로 촬영된 만큼 저 화질일 수밖에 없다. 이 모두는 그 영상이 담고 있는 여행객들의 처지와 닮아있는데, 다음 행선지를 찾아 분주히 바쁜 걸음을 옮겨야 하는 그들의 심리 상태나 보행 속도와 흡사해서다.

 

 <Glitter>(2006)는 특정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일군의 관광객을 원거리에서 촬영한 건데, 화면 정중앙에 흰색 티의 남성이 유독 눈에 띌 것이다. 그가 터트린 플래시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의 플래시는 비상시 거울의 반사로 신호를 주고받던 구시대 커뮤니케이션을 연상시킨다. 수초간의 사진기 플래시 점멸은 관광객들(송신자)과 그들이 담아내려 했던 피사체(수신자)사이를 연결하는 임의적이고 일방적인 신호체계처럼 보인다. 설령 귀국 후 열어본 이미지는 현지에서 구매한 엽서의 그것과는 밀도와 질감에서 큰 차이를 보일 테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송신을 날린다. 그게 여행객의 숙명이다. 때문에 관광객과 여행지 사이의 기형적 관계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가담이 주조한 측면이 크다. <Untitled>(2004)는 보다 진지하다. 화면도 개중에서 가장 많이 깨졌고, 식별의 난이도가 가장 높으며 소요시간도 길다. 마치 요즘 출시되는 휴대폰마다 탑재된 폰카의 조악스러움 마저 느껴진다. 얼핏 CNN이 실황중계 하는 중동지역 공습 장면이 연상된다. 침침한 화면 상단에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작은 불빛은 그래서 마치 폭격기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Untitled>는 런던에서 매해 11월5일 개최되는 가이 폭스 나이트Guy Fawks Night의 폭죽 축제를 원거리에서 작가가 예의 자신의 G5로 담은 것이다. 1605년 신교와 제임스 1세를 제거하고 영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던 가이 폭스와 로마 구교도의 책략을 기념할 목적으로 정례화 된 행사였다. 그러나 한시적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던 작가의 눈에 비친 이국땅의 불꽃놀이는 이벤트성 기념일의 본질이 그렇듯, 어떤 흥청망청의 그럴듯한 동기부여 같았을 것이다.

 

 심야를 가르며 수직으로 치솟는 폭죽 세례는 우리가 악착같이 매달리는 추억의 일시성과 닮았다. 축제 현장에 ‘나도 왔다 간다’는 낙서를 남기는 몰취향의 증거물이랄까. 그렇지만 폭죽장면은 제 3자의 눈에는 공습을 원거리에서 몰래 촬영한 국제보도단의 영상물과 헷갈리게 된다. 효과는 다르지만 <죽기 전에>의 1/24초 만에 벽면위로 투영되는 기념품들- 하도 빨리 지나가서 야간에 항공 촬영된 사진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의 잔상조차 없는 조악한 기념물의 병렬 투사는, 당신이 죽기 전에 황급히 다녀가야 할 강박적 여행지 목록을 조악하게 제작된 미니어처로 ‘일시적으로’ 보여주고 암전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도 <Untitled>와 동일 선상 위에 있다. 국도변을 따라 피사체를 추적했던 작가의 긴 여정은 로드 무비의 스틸 버전 같은데, 그의 지난한 노정은 지방도시를 거쳐, 서유럽, 청계천 같은 특정 지명을 순례하다가, 결국 작가의 자의식으로 귀환한다. 2004년 이전 작업이 주제의 명료성에 집중했다면, 2004년 이후 작업은 문제 의식은 견지하되, 접근법 전부를 수정해야만 읽어낼 수 있다. 이전에는 “이걸 봐라”하면서 디테일까지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식이었다면, 귀국보고전이 보여주는 이후의 작품 동향은 집단 사기극의 지독한 전략과 그 본질을 취급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전 작업이 작가가 관찰자(혹은 관객)의 시점에서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한 풍경을 관객과 나란히 관람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작업은 군중들이 스스로 가담하는 키치적 태도를 원거리에서 지켜보고 그 결과물을 군중이 가담하는 방식대로 기록해서, 고스란히 그들의 면상에 던져놓는 것이다. 때문에 명색이 사진가지만, G5같은 2003년식 5백만화소를 택했다. 무리에서 이탈한 김윤호의 자의식은 매우 예민한 상태인데, 이것이 투영된 것이 이번 전시의 전체 그림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100% 포토샵 작업 <예술가를 위한 시각표Timetable for artists>(2006)다. 날림으로 급조된 시각 이미지(광고판, 미인선발대회, 기념엽서, 관광버스의 동형성)가 우리의 지각과 인식에 폭격을 가하는 국면을 줄기차게 관찰하던 중, 시각 이미지를 제조하는 바로 자신의 작가적 삶에 대한 성찰로 관심이 이전된 것이랄까. <예술가를 위한 시각표>는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각국 도시 지명을 열차 기착지에 일람했다. 행사의 비중에 따라 순위도 매기고 폰트의 크기도 차별화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무려 3순위로 올려놓았는데, 그건 고국에서 개최되는 대표 비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에 비해, 작가와 지리적 정서적 거리는 물론 참여 기회 면에서도 인접해있다고 셈을 한 것 같다. 출발시간, 경유지, 목적지가 선명히 기재된 테이블로 제시한 건 작가의 조급한 심정이 반영된 탓이 크다.

 

<예술가를 위한 시각표>는 여행마냥 꽉 짜인 일정과 경력을 관리하고 소화해야 생존이 보장되는 관료적 미술계와, 이런 폐단을 창작의 소재로 삼는 작가의 직무가 충돌한 지점이 도표라는 절충적인 형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자기분열적 혼란은 자의식이 강한 모든 예술가가 직면하는 고비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김윤호는 그가 탐사했던 초기 관심사가 형태를 변형해서 자신에게 질문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일단이 금번 귀국보고전의 전모다. 수년 후 김윤호는 시각표에 표시된 몇 번 승강장 앞에 서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Tag : 김윤호, 반이정, 아르코전시

name    password    homepage
 hidden


BLOG main image
이것저것 끄적끄적 들락날락 거리며 주서모은 미술이야기
 Notice
댓글과 방명록 활성..
동영상 문제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32)
art-translation (35)
art-foto (14)
London life (12)
art+design (1)
art-publication (24)
Q&A (19)
moji-story (17)
Ideas (2)
good voices (3)
culture+ (5)
 TAGS
국제다원예술축제 올리버 W. 홈스 Sr 게스투스 문화복원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최봉림 foil_iann 행위예술 미니멀리즘 매거진 P 미술과 담론 전시소개 비디오설치 아르코전시 비트겐슈타인 최정화 런던플랫청소 버지니아 총기난사 진중권 생계 미야자키 기요시 푼크튬 문화 예술인 스프링웨이브 도큐멘타 이안매거진 카셀 가나 갤러리 런던 스튜이오 사이먼 놀포크 언어철학 번역 탈루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팔레 드 도쿄 논제 작성 포토넷1월호 바즐아트 에르노트 믹 포토넷 데지르 들롱 포일 이안 인터뷰 vol.3 foil iann 컬쳐뉴스 창작활동 소득 런던 탑 한국역사사진 바즐아트페어 트린T민하 이와 같이 들었사오니 한국사진역사 인쇄 브라이튼 IANN 강수미 파리호텔 가인갤러리 이형구 자음암호 모뉴멘트 런던대학캠퍼스 단락쓰기 고급미술 사진아카이브 베니스비엔날레 필름 2.0 상대주의 바네사 비크로프트 김윤호 1954년대구사진 게으른 오후 대필논란 이경민 김영준 아우구스트 잔더 영국정원 아트페어 포토런던 사회적 초상 남자친구의 대학별 반응 화랑해외진출 인도 아티스트 김한용 국가적 정체성 캠든아트센터 비엔날레 이지누 한국사진의 역사 포일이안 천경우 아라리오 서울 서울시 복원 최재균 전통문화 반이정 조선시대기생 서양식 공간예절 Evil Monito 런던사진
 Calendar
«   2007/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영화(퍼온글)
이안(IANN)출간 2년 맞이 특별할인행사! IA.. (2)
필름 2.0 이안매거진 기사
예술사진 [이안] 매거진 2008년 가을/겨울..
잡지는 취향이다! 한겨래신문 (1)
Q&A: FOIL _ IANN for Evil Monito magazine
포일_이안 (FOIL_IANN) 인터뷰기사 @ 포토.. (2)
lost in translation
‘푸른 대양 * 청춘의 개화’ 에 대하여 (..
포일_이안이 대형/인터넷 서점에 출시!
 Recent Comments
source.....찾는거..
이미연 - 2009
벌거벗은 임금님동화..
montreal florist - 2009
한결같은 관심과 응..
mojikim - 2009
보일라랑 그라픽을..
+bueno - 2009
모가 빠르단? ㅎㅎ
mojikim - 2008
빠르다 빨러.........
백작가 - 2008
앞으로 보시고..더..
mojikim - 2007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종점 - 2007
축하하우!! 정말..
lullaby - 2007
12월달이면 대형서점..
mojikim - 2007
 Recent Trackbacks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cheap databases eng..
cheap databases
buy databases lean
buy databases
buy databases contact
buy databases
buy databases tempe..
buy databases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cheap databases eas..
cheap databases
database empire raise
database empire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database-empire.com
 Archive
2009/10
2008/11
2008/08
2008/01
2007/12
 Link Site
이동우의 북세미나
 Visitor Statistics
Total : 185,982
Today : 2
Yesterday : 5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