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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는 예술가, 조덕현 (펌글)

시대를 읽는 예술가, 조덕현 기사: 미술평론

2004/11/06 22:36

http://blog.naver.com/yaikim/6000726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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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는 예술가, 조덕현


인터넷 서점 YES24 웹진 북키앙,

2001년 2월 1일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작가파일 조덕현 편

서유기 프로젝트 소개문


글   김영애 (미술평론)

yaikim@yahoo.co.kr


조덕현의 회화작품은 대부분 20세기 초엽의 옛 사진작품들을 소재로 한다. 가족앨범을 뒤적거리다 보면 한두 장쯤 발견할 수 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을 커다랗게 확대한 그의 작품 앞에서, 한국의 관객들은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나 단발머리 어린 소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더듬게 된다. 또한 외국의 관객들은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리며, 20세기 전반,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잠시 후 그것이 사진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그려낸 회화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관객들은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화가'라는 타이틀을 지닌 사람들조차 손으로 사물을 묘사하지 않은지 오래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계의 정밀함은 인간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절대적인 능력으로 숭상되는 이 시대에,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그려낸 뛰어난 묘사력에 탄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회화와 사진의 경계는 무엇인지를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각진 색색의 나무토막으로 캔버스를 둘러싸는 트레임을 만들거나 상자와 조명장치를 통해 작품을 설치하는 방식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이어서, 그의 작품은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속에서 완성도를 높이게 된다. (쥬드 폼에 전시된 회화(Hoe-Hwa)작품. 조덕현은 자신의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 'Painting'이 아니라 Hoe-Hwa라는 고유의 표기방식을 고집한다)


조덕현은 이러한 회화작품들로 1990년대 화단의 주목을 받으며 대표적인 한국의 주류작가로 부상했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이 유학파로서 서구진출을 시도한 것과 달리, 그는 순수 국내파로서 일찍이 에딘버러, 뉴욕, 멕시코, 이스탄불, 요하네스버그, 상파울로 등 세계 도처에서 전시를 열며 국제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한국의 미술계에서는 이례적인 경우로 평가할 정도이다.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의 작가적 성공은 그의 작품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1990년대는 1960-70년대 극에 달했던 앵포르멜 추상화나 미니멀 조각작품들이 더 이상 깔끔하고 세련된 미의 정수로 추앙되기보다는 진부하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내몰리던 시기로, 구체적인 이야기와 내용이 있고 구상적이면서도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춘 조덕현의 작품은 새로운 미술을 요구하던 화단의 갈증을 씻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세계 미술계의 향방이 서구를 기준으로 통일되던 단일한 미적 지향점에서부터 제 3세계를 향해, 또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사적이고 다양한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주목하는 것으로 옮겨지고 있던 시기에 한국의 가족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세계의 이목을 끌만한 것이었다. 앵포르멜 추상화나 미니멀 조각품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카라바지오나 푸생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 독학하며 자신만의 지향점을 향해 달려온 그의 노력이 화단의 요구와 시기적으로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작가 개인으로서도 행운이지만,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던 관객들로서도 행운일 듯하다. 기다림의 지루함 대신 새로운 작품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으니 말이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참신하던 그의 데생 작품도 차츰 전형적인 스타일로 여겨지기 시작할 무렵, 조덕현은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카드는 신화, 그 첫 시작은 2000년 3월부터 6월, 전남 영암에서 열린 구림마을 프로젝트에서였다. 그의 새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조덕현의 작가적 성공을 우연한 행운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변화의 양상이며 그 시기가 너무나 날카롭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히려 그의 성공은 시대적 요구를 간파하는 빠른 눈과 부단한 노력의 부산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재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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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와 때를 맞춰 전남 영암군과 이화여대 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구림마을 프로젝트'는 전통적으로 도자기가 유명했던 구림 마을을 배경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여러 작가들이 저마다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는 대규모의 야외 전시였다. 조덕현은 구림마을의 '구'가 '비둘기 구(鳩)'자가 아니라 '개 구(狗)' 일 수도 있다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구림마을의 신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폐가의 마당을 파고, 종교적 의식에 따라 파묻혔던 수십 마리의 개가 발굴되는 상황을 연출해 놓은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이기도 하며 설치작품이기도 했다. 작가는 개를 숭배하던 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이 한반도로 이주해 지금의 구림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그래서 마을 이름이 구림이 되었다는 일종의 가설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여기서 작품은 작가적 상상력을 증빙하는 하나의 자료가 되는 셈이었다. 더불어 제시된 동네주민들과의 인터뷰, 전문가의 견해가 담긴 비디오테잎과 일련의 리포트들은 그의 작가적 상상력을 사실로 만드는 보조자료가 된다.


구림마을의 신화는 2001년 1월, '아스칼론의 개(Les Cheins d'Ascalon)-미지의 신을 향한 여행(Voyage vers le Dieu inconnu)'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파리의 쥬드 폼(Jeu de Paume) 미술관으로 옮겨갔다. (2000년 11월 28일∼2001년 1월 14일) 작품의 가설은 1248년에 쓰여졌으나 원본은 손실되고, 18세기에 재판된 책 <회교 세계로의 여행 (Le voyage dans le monde Musulman)>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 이인화의 문학적 상상력이 가해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중세시대, 몽골의 사령관 엘시기데(Eltchigidei)는 공동의 적 이슬람에 대항하여, 프랑스의 루이 9세와 군사적 협력을 맺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 때 두 강국간의 의사교환이 있었다. 그러나 원정 도중 예수살렘에서 루이 9세는 이집트군의 포로가 되었고 비싼 석방금을 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루이 9세는 몽골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고, 몽골의 황제에게 선물을 하고자 했다. 선물로는 몽골인들이 암사슴과 늑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에 따라, 지금의 이스라엘 남부지역인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 아스칼론의 폐허지에서 발굴된 20마리의 개 조각을 준비했다. 루이 9세는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몽골로 선물을 보낼 생각이었으나, 돌아와 보니 상황은 변해있었다. 몽골의 황제가 군사적 협력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물로 준비했던 개 조각 20여 마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루이 9세는 그것들이 이교도의 우상이라는 생각에서 종교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상자에 담아 근교의 뽕나무 숲 속에 묻어버리게 된다. 그 곳이 지금의 쥬드 폼과 루브르 미술관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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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은 쥬드 폼 바로 옆에 개 조각이 발굴되는 상황을 설치해놓았고, 20마리는 전시장 안에 두었다. 작품 좌우로 설치된 거울은 20여 마리의 개를 수십, 수백 마리의 숫자로 불리며 전시효과를 높이고 있다. 아니, 조덕현은 쥬드 폼 근처에서 개 조각품들을 발굴해내었고, 그것을 발굴 상태 그대로 보존해두었다. 발굴된 수십 마리의 개들은 쥬드 폼 미술관 전시실에 전시되었다. 발굴된 개들은 중세시기의 것들로 판명되었는데, 이로써 프랑스의 루이 9세와 몽골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위의 두 가지 기술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은 상황 여기저기에 뚫려있는 빈 공간 속으로 침투해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기도 하고, 이야기 바깥에서 전시 전체를 관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채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즐거움을 누릴 다름이다.


미술 속에 문학적인 이야기가 포함되는 것은, 현대 추상화가 생기기 이전에는 빈번하던 일이었다. 과거 대부분의 회화나 조각 작품들은 성서나 신화의 한 장면을 삽화처럼 재현해 낸 것이었다. 그러나 조덕현은 다시 추상 이전의 미술로 되돌아가는 듯하면서도, 주제나 소재, 표현방식 그 자체로써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 개 조각상만으로는 무엇도 나타낼 수 있다. 이야기는 개 조각상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전후의 상황에 달려있다. 그것은 마치 영화처럼, 우리 모두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배우와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며 그 속의 이야기를 있을법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으로, 가설연출 자체를 작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영역은 하나의 그림, 하나의 조각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를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과 결과물들까지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조덕현의 작품들은 정밀한 회화작품으로부터 가상의 설정으로 변화하며, 추상회화의 식상함을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과거의 미술작품들 속에서 모티브를 빌어와 새로운 푸대에 담아내는 것은 조덕현이 지닌 대단한 장점이다. 그는 사람들이 아주 낯선 것보다는 친근하지만 새로운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지금의 미술은 작품 자체보다도 작품을 이루는 담론이 풍부해지기를 원한다는 것, 그러나 이제는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는 원치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관객들은 수동적인 구경꾼이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만의 해석을 이끌어내길 원한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며 호소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우리가 그의 새 작품에 한참 재미를 붙이고 즐겁게 탐미하고 있는 지금, 그의 눈은 미래의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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